“서기 383년. 전진(前秦) 부견(苻堅)이 100만 병사를 이끌고 동진(東晉)을 멸망시키려 진격해 왔다. 사안(謝安)은 동생과 조카에게 8만 병사를 이끌고 비수(淝水)에서 적을 맞아 싸우게 했다.”
청샤오윈(程小雲)이 말했다. 1948년 중앙은행 베이핑(北平) 지점장 팡푸팅(方步亭)의 후처다.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국민당 특별조사위 전화다. 아들 팡멍아오(方孟敖)를 앞세워 자금 흐름을 캐려는 전화였다. 팡푸팅은 수화기를 들었다 탁자에 놓고 말했다.
“계속하오.”
“사안은 집에서 손님과 바둑을 뒀다. 실제는 전방의 전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보가 왔다. 사안은 읽은 편지를 치우고 다시 바둑을 계속 뒀다. 대국을 마치자 참지 못한 손님이 물었다. 전황은 어떤가? 사안은 그제야 대답했다.”
팡푸팅이 샤오윈 대신 말을 이었다.
“사안이 말했지. ‘아이들이 적을 크게 무찔렀소(小兒輩大破賊).’ 당신은 그제야 신문을 펴 보이며, 멍아오가 공중전에서 혼자 일본 적기 세 대를 격추했다고 말했다. 일본군 폭격에 엄마와 누이를 잃은 멍아오가 나와 의절한 사정을 알고 사안의 이야기로 날 위로했지. 난 아들의 승리가 기뻤소. 지금 멍아오가 다시 적을 무찌르려 하오. 과연 내가 ‘적’이오?”
2014년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역사 드라마 ‘북평무전사(北平無戰事, 이하 북평)’의 명장면이다. 후한(後漢)부터 동진(東晉)까지 200여 년간 명사의 일화를 엮은 『세설신어(世說新語)』 중 한 구절을 풀어냈다. 100만 대군을 8만으로 대파한 비수대전 앞에서 극도의 평상심을 유지하며 바둑을 뒀던 동진의 명재상 사안의 일화 ‘사안위기(謝安圍棋)’ 46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드라마 ‘북평’ 속 국민당 공군 장교 팡멍아오는 공산당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비밀당원으로 그려진다. ‘북평’은 부자(父子), 처남과 매형 사이에 신분을 숨긴 채 나라를 위한다는 신념 아래 펼쳤던 처절한 국공 첩보전을 그렸다.
지난 1월 31일은 ‘북평’에 나온 베이징 무혈 함락 70주년이었다. ‘고도신생 인민승리(古都新生 人民勝利)’란 주제의 역사전시회가 베이징시 당안관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 계속될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행사의 시작이다.
“역사는 차의 백미러와 같다. 거울만 보며 운전하면 도랑에 빠진다. 거울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누가 추월할지 드러낼 뿐이다.” 미국 냉전 역사가 존 루이스 개디스의 말이다.
다음달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북 미사일 동향, 미·중 충돌, 경제 불안까지 ‘사안위기’ 수준의 평상심을 요구하는 요즘이다.
<출처 : 신경진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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