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라”가 안 먹히는 이유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자극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안 먹히는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아이가 짜증을 자주 내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우리 뇌의 해마(hippocampus)와 편도체(amygdala)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되는 자극에 아주 민감한 부분이다.
해마는 외부로부터 들어온 정보가 나에게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를 판단해 정보를 걸러내고, 다른 부위에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편도체는 주요한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 관련된 부위다. 감정적으로 좋고 싫음을 결정하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나 정보가 나에게 위험한 것인지, 안전하고 친숙한 것인지를 평가한다. 이것은 우리의 생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면서 경험하는 두렵고, 공포스럽고, 슬프고, 극도로 화가 나는 등의 부정적 감정과 경험들이 바로 이 부분에 저장된다.
해마와 편도체는 서로 이웃하고 있어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편도체는 저기 멀리서 다가오는 개가 나에게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도록 순간 집중하게 하고, 해마는 그 개가 안전하다는 여러 가지 정보를 전달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 해마와 편도체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에 매우 취약하여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이가 늘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에 있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뇌에서 기억의 저장을 담당하는 해마가 영향을 받게 된다. 해마의 기능이 불안정해지면 외부의 정보가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아이들의 학습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편도체가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쉽게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고 사소한 것에도 화가 벌컥 솟는 등 충동과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지속되는 스트레스로 많은 양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두뇌 속에 오래 머문다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뇌와 그렇지 않은 뇌는 다르게 작동하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된 아이들의 주의 집중력과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과학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의 두뇌는 살아남는 데 일차적 관심이 있다. 그것이 안정되어야 학습도 할 수 있다.
배재현, 임상심리전문가, “내 아이의 트라우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