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비상구가 있나요?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위해서 쏟아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만을 위한 비상구, 골방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아프지 않다.
그래야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힘이 생긴다.
나를 위해 꼭 필요해, 하나쯤은
비상구는 화재나 지진 따위의 갑작스러운 사고 때 급히 대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특별한 출입구다. 일상적인 날에는 별 쓸모가 없지만, 사고 시에는 유일한 탈출구다. 위험한 상황일수록 비상구는 그 어떤 문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발휘한다. 비상구는 긴급 상황을 벗어나는 안전의 문이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평화의 문이다. 아무리 멋진 건물이라도 비상구가 없다면 화재와 재난의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건축 허가도 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도 비상구가 필요하다. 멀리 보고 줄기차게 가야 하는 인생길에서 비상구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다. 지금보다 젊은 나이에는 비상구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했다. 혈기왕성하게 일과 생활을 영위하며 열정적인 에너지를 폭발시키던 때는 더욱 그랬다. 비상구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에게 비상구란 휴식이 될 수 있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 재충전이 될 수 있다.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아 계획을 짜고 실행하며, 그 과정에서 상급자로부터 인정받고, 자신의 계획이 실제로 성과를 거두는 등 탄탄대로의 길을 갈 때는 미처 비상구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교류하고 칭찬과 부러움, 호감이 쏟아질 때에는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굴러가는 일들이 버겁게 느껴지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뜻밖의 암초를 만났을 때, 큰 실패를 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탈출욕구를 느끼고 비상구를 찾는다. 두려움과 부담감에 어깨가 짓눌리는 듯하고 숨이 가쁠 때 생각한다. 도망가고 싶다고, 떠나고 싶다고!
이런 감정을 느낄 때에는 과감히 비상구를 찾아야 한다. 비상구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너무나 괴롭고 버거운데도 책임감 때문에 그냥 있으면 어떤 괴물을 맞닥뜨릴지 모른다.
언제까지나 참기만 하는 시대는 끝나도 벌써 끝났다. 지금은 쏟아내는 시대다. 어금니 꽉 깨물고 참을 ‘인忍’자 새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위해서 쏟아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만을 위한 비상구, 골방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아프지 않다. 그래야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힘이 생긴다.
비상구는 나에게 건강한 활력을 제공한다. 그러기 위해서 철저하게 자신만의 맞춤 비상구를 가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그런 건 애초부터 의미가 없다. 내가 마음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재충전할 비상구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뿐이다.
가끔씩 상식을 깨는 비상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콜센터 여직원의 비상구는 복싱, 격렬한 스포츠 선수의 비상구는 종이 접기, 간호사의 비상구는 번지 점프, 유치원 선생님의 비상구는 라틴댄스, 작가의 비상구는 드럼 연주 겸 싱어 송 라이터, 프로게이머의 비상구는 산악자전거이다. 무엇이든 문제없다. 문제라면 지쳐가는 자신을 방치해두는 것,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자신의 소리를 외면한 채 계속 달리기만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외면당한 자기 자신이 결국 오래지 않아 쓰러지리라는 것을 모른다는 게 문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아주 미묘한 감정에도 휘둘릴 수 있는 존재이다. 자신의 감정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키우는 자폭 행위와 똑같다.
나를 위해 사치를 부려도 된다. 비상구는 한 가지일 필요는 없다. 나한테 도움이 된다는 게 확실하다면 다양한 형태로 여러 가지를 두어도 좋다. 자신의 힘든 것과 고단함을 꼭 특정인에게 위로받아야 하는 법이 없는 것처럼 비상구도 마찬가지다. 더 풍요로운 삶과 활력을 가져다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으로부터 용기를 얻어도 좋다.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것도 좋지만, 마라톤처럼 긴 인생의 여정에서 오래 달리기 위해 비상구를 만들자. 이것이야말로 값비싼 명품 가방보다, 고가의 손목시계보다 더 나의 숨통을 틔워준다. 그야말로 생활필수품이다.
내가 나를 위로할 때 / 김나위 / 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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