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생존의 의미"
인간은 생성소멸의 순환 원리에 의해 무작위로 창조된 자연적 산물이며 영적 피조물이다. 인간은 자연의 품에서 생겨 자연의 품에서 살다가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자연의 일부이다. 인생은 일시 하늘에 떠있는 구름조각과 같고, 인생은 순간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와 같다. 인생은 일시 머물다 흩어지는 구름과 같고, 인생은 홀연히 왔다 사라지는 바람과 같다. 한조각 구름처럼 일시 머물다가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일생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 한들 세속 인간 같이 어리석은 존재도 드물다.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고 숭고할지라도 인간의 속성만큼은 비정하고 잔인하다.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해도 심신을 갈고 닦지 않으면 인간처럼 추한 존재도 없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한다면서도 인간 같이 추한 존재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한들 약육강식의 본질은 동물보다 별반 나을 것도 없다.
생명의 잉태보다 생명의 탄생이 더 소중하고, 생명의 탄생보다 생명의 보전이 더 소중하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행운일 수 있지만, 이미 세상에 태어난 자체부터 불행일 수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축복일 수 있지만, 이미 고난의 길을 여는 불행의 시작이기 쉽다. 새 생명의 탄생이야 환희이기도 하지만, 이미 죽음을 담보하는 비극의 예고이다.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나 삶은 혹독하고, 삶의 투자는 막대하나 대가는 초라하다. 동물은 자기 생존을 위해 무리를 이루고, 인간은 자기 권익을 위해 파벌을 만든다. 냉엄한 적자생존의 섭리 속에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것만도 대단한 생명력이다. 축복 속에 태어나도 출생은 고달픈 환난의 출발이며 고단한 인생살이의 서막이다. 탄생이 세속 인간의 숙명적인 운명이라면 죽음도 세속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능력자는 죽음에 대비하며 사는 셈이지만, 무능력자는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셈이다.
작은 행복을 얻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삶의 근본 속성이다. 인생은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일뿐더러 인생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필요악 속에 사는 필요악적 존재물이다. 아름답고 윤택한 상향적 생존욕구와 무료하고 권태로운 패자의 길을 면키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고단한 삶의 현장을 찾는다. 인간은 원초적 생존본능과 무한한 행복추구의 욕망 때문에 오늘도 고달픈 세속의 길을 걷는다. 일을 하는 것은 생존의 방편이지 목적은 아니며, 세상을 사는 것은 인생의 과정이지 목적은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원초적 생존본능으로 살기 마련이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행복추구의 열망을 포함한다. 원초적 생존본능과 무한한 행복추구의 욕망 때문에 발전을 위한 변화의 길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삶의 속성이다. 행복추구의 열망은 강한 생존욕구를 유발하고, 생존욕구의 갈망은 강한 이기심을 촉발한다.
세속 인생은 강자의 위선적 자비와 약자의 저항적 굴종이 어우러지는 한판 승부이다. 인생은 선택과 피선택의 고달픈 연속선이며, 지배와 피지배의 불가피한 소용돌이이다. 인생은 지배와 피지배라는 냉엄한 생존방식에 의해 고달픈 삶을 영위하기 마련이다, 만생명의 생존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간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며 불확실한 인생의 길을 가는 법이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이런 자문 형식의 물음이 있지만, 누구나 원초적 생존본능과 무한한 행복추구의 욕망 때문에 살기 위해 먹는 셈이다.
일출은 새로운 광명인가. 또 다른 일몰의 시작인가. 탄생은 새로운 희망인가. 또 다른 불행의 출발인가. 인류가 존재하는 이상 이런 의문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출은 찬란할지라도 일몰은 쓸쓸하고, 등장은 화려할지라도 퇴장은 초라하다. 같은 세월이라도 화와 복은 따로 있고, 같은 시각이라도 밤과 낮은 따로 있다. 뜨고 지는 해와 오고 가는 세월만큼은 변함이 없으련만 사람들은 연말이라며 아쉬워하고, 연초라며 새해 소망을 기원한다.
삶이란 희망을 창조하는 것인가. 희망을 꿈꾸는 것인가. 무료한 세월만 보내는 것인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인가. 인간이 살아 숨 쉬는 한 이런 의문만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사냥을 못해 굶어죽는 포식자가 불쌍한가. 포식자에게 잡혀먹는 동물이 불쌍한가. 이런 이율배반적 모순은 부지기수이다.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이상 자아실현의 욕망에 앞서 자기완성의 실현을 다지는 의지만큼은 갖고 있어야 한다.
세속 필부는 살기 위해 밥을 먹을지라도 영웅호걸은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는다. 별 볼일 없는 필부는 본능적으로 살려 하나, 할 일이 많은 영웅은 의도적으로 살려 한다. 인생의 가치를 모르고 무의미한 세월을 보낸다면 영판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산송장 신세나 다름없다, 인간이 자기집착에 연연하는 이상 속물의 굴레를 벗어나기도 어렵고, 인간이 보편적 자아를 모르는 이상 속인의 한계를 벗어나기도 어렵다. 인간생활에 경제활동이 아닌 것도 없고, 인간생활에 이해득실이 없는 것도 없다.
누구나 주체적인 삶을 추구한다 해도 현실이 여의치 못한 이상 고단한 삶에 지배당하기 쉽다. 누구나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기 마련이지만, 자칫 자아를 상실한 수동적 인생을 살기 쉽다. 부귀영화를 좇는다 해도 인생이란 전쟁과 같은 승부수는 아닌 만큼 비록 더디 간다 해도 제대로 바르게 갈 수만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라 여겨볼 수 있는 일이다. 매사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바르고 안전하나, 급하면 질러가고 막혔으면 둘러가는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 세상사 지름길로 가는 것이 당연히 빠르지만, 요행이나 편법보다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바르고 안전하다. 인간이란 의식주라는 생존기반과 가정이라는 인적 구성체 그리고 지식과 교양을 통한 사회 적응력 등 최소한의 기본 요건은 갖추어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인간은 기본적 생존문제에서부터 무한한 행복추구에 이르기까지 완성을 향한 미완성의 욕구충족을 위해 움직이기 마련이다. 인생은 꽤나 아름다울 듯싶어도 막상 지내놓고 보면 고달픈 일시 여정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은 꽤나 재미있을 듯싶어도 먹고 마시고 잠자고 일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반복적 일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생살이란 그렇게 행복한 것도 아니며, 인생살이란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니다. 도학군자라도 세속에 태어난 이상 속인일 뿐이며 흙을 밟고 사는 한 세속의 때가 묻기 쉽다. 도학군자라도 세속에 태어난 이상 속인일 뿐이며 세속의 속물 습성을 익히며 살아가기 쉽다.
[출처] 인간과 생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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