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 키우기
이 글은 원래 제목을「여자 마음 읽기」로 하려 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해야 더 호기심이 생길 것 같고, 더 많이 읽힐 것 같아 이것으로 정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겉으로는 안 그런다 해도 속으로는 자기가 쓴 글을 더 많이 읽어주길 바란다. 여기서 쓰는 것은 내 생각이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글은 생각하기에 따라 곧 삭제될 수도 있다. 나는 그걸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항상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의도와는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얘기는 옳거나 그르다는 얘기도 아니고 그게 옳아 계속 고수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현 상황과 조건에서 상대를 더 잘 알아 서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성인지 감수성’에 무딘 것은 내가 보기엔 상대를 하나의 전체로 보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일부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 사람 전체를 알게 되고 상대로부터 표출되는 진짜의 언어를 듣고 그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젠더 감수성을 더 잘 수용할 거라 믿어 내가 공부한 범위에서 여자의 마음을 중심으로 내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상대의 표피가 아닌 그의 전체 맥락이나 내면을 포함한 그의 전반을 알게 된다면 젠더 감수성에 둔감하다는 말을 전보단 덜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도 나와 같이 느끼고 있다고 여기고 같은 위치에서 상대를 바라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대상화하여 자기감정을 내보내는,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기 때문에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 상대의 마음을 보다 더 잘 알고 상대 성에 대해 아, 이런 것일 수 있구나 하고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의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그렇지만 나는 교육적이거나 계도적으로 가 아닌 더 따끈하게 ‘사랑에 있어 남녀 간의 심리 차이’를 중심으로 풀어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미 정리된 것의 배포가 아닌 남녀 심리 발굴을 통해 상대의 겉만 아닌 속을 포함해 전반을 알게 되어 더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할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앞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더 많이 알게 되면 그것을 더 아끼게 되는 것도 분명 있음에서다.
한 남자에게 일편단심이었던 여자가 언제 돌아서는가. 나는 「하트시그널 시즌3」을 지금 7회까지 보았는데 거기서 일편단심이었던 이가흔이 천인우에게서 정의동으로 러브라인을 바꾸는 이변과 충격을 선사했다. 여자는 조건 좋고 첫눈에 반한 남자였더라도 자기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잘해주거나 전과 다르게 자기에게서 관심이 멀어져 상처를 주거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남자에겐 ‘정뚝떨’이 작용해 마음을 접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 남자의 입장에선 일시적으로 마음이 잠시 흔들려 다른 여자에게 그랬던 것이더라도 마음을 돌린 여자를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전에 한 노력과 시간과 인내의 열배 정도를 쏟아 붓는다 해도 회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말도 있듯이) 여자의 마음은 갈대이고, 실은 하루에도 그 마음이라는 것이 열두 번도 더 바뀌는 것을 그 남자가 간과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정뚝떨’은 남녀 모두에게 치명적인 사랑의 독버섯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여자는 언제 행복에 겨워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까. 처음엔 별로였던 남자였는데(여기서 너무나 비호감이거나 같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몸이 사려지는, 경계하게 되는 그런 남자는 말고) 한결같이 꾸준히 자기의 거듭된 무심함에도 자기를 향한 마음이 변함이 없을 때 여자는 그 남자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 몸도 마음 따라 기울어지게 된다. (여자가 남자에게 호감이 있으면 개방적으로 바뀐다. 냉랭한 팔짱이 펴지고 몸의 방향이 자꾸 그리로 향하고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자기를 더 많이 그 남자에게 보여주려 한다. 이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발생한다. 그 남자와 함께 있을 땐 괜히 신이 나서 말도 많아진다)
둘 사이에 썸의 단계를 지나, 이젠 뭔가 안심이 되고 편안한데 그러면서 그 남자는 나를 늘 주시하는 것 같고, 거의 하루 종일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혼자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나와 같이 먹는 꿈을 꾸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자꾸 그 남자가 나에게 줄 때 그런 느낌을 여자가 거듭 경험하게 되면 그 순간 내가 그 남자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구나, 하고 여자는 한없는 행복감에 젖어드는 것이다.
참고로 여자가 썸단계에서 사귀는 단계로 넘어갈 때 그와의 첫 키스 시점에서, 과연 그가 그것으로 자신이 생각한 환상을 체현시킬 수 있는지 가늠해 본다.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관계를 계속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여자의 환상 체험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여자와 말할 때 그녀가 내 말을 통해 어떤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면 나는 알아듣게 여자에게 말을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잘난척하며 논리에 입각해 설명하려하지 말고 그 여자의 머리에 얼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게 말하라는 말이다. 사람이 실제 움직이는 것은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성에 의해서이고,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사람보단 마음을 울리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니까. 여자에게 말할 땐 논리보단 감정에 호소하는 게 더 효과가 크다. 시치미를 떼지만 여자는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이미 벌써 키스 단계를 지나 결혼까지 하고 애를 포함 셋이서 살고 있는 모습으로까지 상상의 나래를 편다고 한다) 그래 여자를 만날 땐 잘 씻고 깨끗한 옷을 입고 나가는 건 기본이고, 여자를 내 쪽으로 자꾸 쏠리게 하는 향수를 가볍게 뿌려주는 센스, 여자는 그 남자로부터 은은히 풍겨오는 야릇한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취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는 시각에, 여자는 후각에 약하다.
여자는 언제 남자에게 마음이 기우나. 뭔가 자신이 초라하고(그런데 남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화사한 차림으로 웃고 다니는데)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우울할 때(이런 상태에서 여자는 아무 남자나 만나면 안 된다. 지금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이기 때문에 ‘겉으로만 좋은 나쁜 남자’를 만날 확률이 높다. 늘 자기 주변을 서성이던 그 남자가 역시 제격이다) 평소 별로였던(이 남자는 물론 여자를 늘 지켜봐왔기 때문에 지금 이 여자의 상태를 잘 알고 있다) 남자가 평소에도 내 주변에서 서성거렸지만 오늘은 진짜 곁에 있는 것이 팍 느껴지고 가만히 지켜봐주고 푸념이나 내 우울한 감정을 가만 들어주고(이때 남자는 해결하겠다고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선 안 된다. 그저 듣기만 해라) 같은 편이 되어 응원해 주고, 같이 그 나쁜 놈을 향해 쌍으로 욕할 때 여자는 그것(무조건 자기편이 되어준 것)을 잊지 못한다.
직장에서도 자신이 남들로부터 왕따 비슷한 위화감을 느끼고 나름 열심히 했지만 인정받지 못해 속상해할 때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지는 한 남자의 말, 그 말이 선명히 내 귀를 울리면서 내 숨은 노력을 알아주는 짧지만 힘이 되는 그 말, 남들은 모른 척 하는데 그 남자만은 나를 격려해주는 그 말, 당시엔 모르더라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악! 이 남자 뭐지?’ 하게 되는 그 느낌. 그 순간 여자는, 자기 주변에서 이상하게 자주 보였던 그 남자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남자는 그 여자를 마음속으로 짝사랑해 왔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거의 전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여자가 지금 노력이나 능력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까지도 물론 알고 있다. 그래 당연히 알고 있던 것들을, 풀이 죽은 그녀에게 뭔가 힘이 좀 될까 해서 넌지시 전한 것뿐이다. 동시에 그 남자도 그 여자로부터 이제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게 된 것이기도 하고)
그럼 남자는 언제 행복할까. 남자는 실은 자기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송혜교나 김태희, 한예슬, 수애 같은 여자와, 즉 한눈에 반한 여자와 같이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하다. 그러나 남자도 마음이 변한다. 남자에게 가장 위험한 사랑의 단계는 맨 나중에 온다. 사랑의 단계는 설렘에서 편안함의 단계를 거쳐 의리와 우정으로 접어드는데 그 의리와 우정으로 맺어진 사랑을 남자는 잊지 못하고 다시 그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여자는 과거를 잊고 충분히 새로운 것에 적응해 가며 새로운 삶을 아주 태연히 살아간다. 그러나 남자는 그게 잘 안 된다. 여자는 현재에 살고, 남자는 추억을 먹고 과거에 살아가는 것이다)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오가 지선우에게 그러는 이유는 이미 이 의리와 우정의 단계를 거쳤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 접어든 남자는 잠시 바람을 피우더라도 다시 그걸 잊지 못해 돌아가게 되어 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인 것이다. 남자에겐 이 단계가 사랑의 올가미이며 쥐약이 되는 셈이다.
거기서 헤어날 자신이 없으면 그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무리 악명 높은 카사노바라도 이 단계에 이르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그래 그들은 거기에 이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거기에 빠지면 카사노바라는 자신의 본분(카사노바의 사명이랄까 업은 자기가 지정한 여자를, 특히 만만찮은 여자를 수중에 넣고 마음대로 뒤흔든 다음 목표를 달성하고는 가차 없이 끊어버리는 것이다. 뭔가 심상찮음을 뒤늦게 알아챈 여자는 자신의 전부를 바친 그 남자를 부여잡고 울고불고 매달린다. 카사노바는 그 상황을 즐기면서 자신이 목표로 한 곳을 향해 게임 레벨을 높일 뿐이다. 이게 그의 본분이고 그가 사는 이유다.「비밀의 숲」에서 조승우처럼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끼는 감정의 일부가 손상된 경우 자기에게 주어진 미션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이 배제된 것들을 AI가 대신 수행해 가면서 인간의 일자리는 이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영역만 남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하지 않나. 조승우 같고 AI 같은 카사노바가 진정한 카사노바인 것이다)과 정체성(이 시대 마지막 남은 진정한 카사노바)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남자는 이 단계에서 사랑의 올가미에 걸려드는가. 그 여자가 떠났더라도 남자의 마음에서까지 완전히 떠난 건 아니다. 어느 날 옷을 입는데 그 여자가 사준 옷이 눈에 들어오고, 음식을 혼자 먹고 있는데 그걸 그 여자와 같이 먹을 때 그 여자가 한 행동이나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데 그 여자와 같이 간 곳과 같은 장면이 스크린에 펼쳐지면 그 순간 눈물이 나고, 당장 그 여자를 만나 다시 그곳에 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 후 만나는 어떤 여자라도 남자의 성에 차지 않는다. 그 어떤 여자라도 의리와 우정을 거친 그 여자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게임 오버다. 이 여자는 그 남자에게 있어 언제나 천하무적이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더라도 그 여자라면 이럴 때 이렇게 했는데, 왜 이 여자는 그걸 못할까? 하는 식이다. 과거의 여자가 그 남자에게는 여자를 보는 기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는 그 여자의 올가미에 빠져버렸다. 프로 카사노바들은 이걸 가장 경계한다. 영화「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류승룡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는 마치 아빠가 딸의 기준이 되어 남친에게 이 남자에게선 왜 아빠로부터 당연히 나오는 ‘그런 그 느낌’이 없지?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여자는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는 것이, 두렵고 정말 끔찍하게 여겨질 때 그 남자와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 놔야 한다. 자기 흔적과 체취를 그 남자 요소요소에 깊이 심어 놔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의 매개들을 통해 사랑하는 남자가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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