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 이야기

아직도 그대는..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는가?

딸기라때 2013. 4. 22. 22:45

 

명상의 비밀은 그대가 존재하는 매 순간을 자각하고,

모든 사념과 행위 속에 깨어 있음의 태양을 지속적으로 비추는 데 있다.
마음 안이나 마음 밖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일들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우리는 차를 마시는 그 행위 속에 완전히 존재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그 일에 완전히 몰입한다면,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은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차를 마시는 그 행위 속에 완전히 존재해야만 한다.
그대는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어람나 많은 시간을 비워 두고 있는가?
뉴욕이나 도쿄를 방문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커피숍으로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고 재빨리 마신 뒤,

돈을 내고 다른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가곤 했다.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고 나가기까지 겨우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커피숍에는 대개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퍼지며, 그대의 귀는 음악을 듣고,

그대의 눈은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그대의 마음은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고 있다.
그런 것을 두고 진정으로 커피를 마신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대는 차 마시는 명상에 참석해 본 적이 있는가?
그곳에서는 차 한 잔을 마시는 데 두세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시간은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아니다.
오로지 함께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이다.
어쩌면 그대는 그것이 무책임한 행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참석자들이 세계의 여러 문제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가 인정해야만 할 것이 있다.
그런 방식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차를 마시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벗과 더불어 차 한 잔을 마시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나 역시 차 한 잔에 두 시간을 바치는 것이 조금은 심하다고 생각한다.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
정원 일, 빨래, 설거지, 책을 묶고 글을 쓰는 일 등 할 일이 많다.
아마도 그런 일들은 차를 마시고 숲 속을 산책하는 것보다 덜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깨어 있는 상태에서 그 일들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들 역시

매우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심지어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를 닦는 일조차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설거지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는 생각은 단지 그대가 그것을 하고 있지 않을 때만

드는 생각이다.
일단 싱크대 앞에 서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더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그것은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다.
나는 각각의 접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
접시와 물, 그리고 내 손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완전히 자각한다.
나는 안다.
만일 내가 차를 마시러 가기 위해 그릇 닦는 일을 서두른다면,

그 시간이 별로 재미없고 무가치하게 느껴지리라는 것을.

그대는 앉아서 차 한 잔을 즐기기 위해 설거지를 빨리 해치우려고 한다.
그러면 접시 닦는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대는 설거지를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설거지를 할 때 그대는 살아 있고,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삶을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를 마시기 위해 자리에 앉더라도 그대는 그것들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그대는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그대는 찻잔을 내려놓고 전화번호부에서 어떤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그동안 차는 차갑게 식어 가고,

차의 맛과 향은 차를 마시는 즐거움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그대는 미래에 이끌린 나머지 결코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그런 모습에 대해 알고 있다.
따라서 그대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삶의 1분 1초는 모두 하나의 기적이기 때문이다.
접시 자체는 물론, 내가 지금 여기서 접시를 닦고 있음은 놀라운 기적이 아닌가!
내가 씻는 그릇 하나,

내가 쓰는 시 한 편, 내가 종을 울리는 매 순간들이 모두 하나의 기적이다.
그것들은 저마다 똑같이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깨어 있음의 빛 속에서는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이 신성해진다.
그 빛 속에는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경계가 없다.
사실 설거지를 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는 걸 고백해야겠지만,

나는 매 순간들 속에 완전하게 살아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
접시를 닦는 것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접시를 깨끗이 하기 위해 설거지를 할 뿐만 아니라,

접시를 닦는 동안 매 순간을 완전히 살아 있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일들도 접시를 닦는 것처럼 할 수 있다.
일을 함과 동시에 나는 나 자신의 모든 동작을 자각하고,

부드럽게 숨을 쉬며 호흡 하나하나를 느낀다.
일을 해나가는 동안 내 마음은 더없이 평화롭다.
내가 전문적인 기술자나 기계만큼 하루에 많은 양의 책을 만들 수 없음을 알지만,

내가 그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돈을 많이 쓰고 싶다면, 열심히 그리고 빨리 일해야 한다.
하지만 소박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평화롭고 완전히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일할 수가 있다.

나는 일을 적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일하면서 보잘것없는 돈을 버는데,

그래서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쓸데없는 물건의 생산을 줄이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과 일을 나누고,

동시에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몇몇 개인들과 공동체들은 이미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바람직한 신호다. 그렇지 않은가?

언덕이나 공원 또는 강가를 거닐 때,

그대는 입술에 반쯤 미소를 지은 채로 자신의 호흡을 따라갈 수 있다.
또한 피곤하거나 짜증이 날 때 편안하게 자리에 누워 팔을 늘어뜨리고

모든 근육의 긴장을 풀고, 그대의 호흡과 미소를 자각하며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긴장을 푸는 것은 멋지고 매우 기분 좋은 방법이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호흡하고 미소를 짓는다면,

그대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질 것이다.
그대가 가족들에게 아무리 값비싼 선물을 사주더라도,

그대의 깨어 있는 마음과 호흡, 미소만큼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다.
더구나 이 소중한 선물은 돈이 들지 않는다.


깨어 있는 마음이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는 능력이다.
한 잔의 물을 마실 때 나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마시거나, 다른 생각을 하며 마실 수 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물을 마실 때, 나는 진정한 존재가 된다.
그 때 나는 나 자신이 되고, 내 몸과 마음은 100% 하나가 된다.
내가 100% 나 자신이기 때문에 물 또한 내게 스스로의 모습을 100% 드러낸다.
따라서 나와 물 둘 다 진정한 존재가 되고,

물을 마시는 순간 삶이 그곳에 진정으로 존재하게 된다.


내가 어린 승려였을 때 어느 날 스승이 내게 말했다.
"나가서 대나무 막대기를 하나 갖다 주겠나?"
나는 스승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면서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문을 닫지 않았다.
그 때 스승이 나를 불러 세웠다.
"틱낫한!"
나는 다시 와서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대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문을 닫지 않았구나. 다시 하라."

그래서 나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잠시 시간을 갖고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음을 집중하고, 내 행동을 자각하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손잡이를 잡고,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나는 계속해서 깨어 있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긴 뒤 문을 닫았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에서 대나무 막대기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걷는 수행을 했다.



언젠가 나는 미국의 트래피스트회 수도사인 토머스 머튼을 방문했다.


나 대신 토머스 머튼이 그 수도회의 수도사들에게 강연을 했다.
나는 그냥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그 때 그가 말했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틱낫한 스님이 문 닫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진정한 수도승임을 알았습니다. 수도사는 수도승을 알아보는 법이지요."



모든 발걸음마다 하나의 도착이 되게 하라.
그대는 신의 왕국에서 걷는 것처럼 걷는다.
바로 지금 그대는 신의 왕국을 걷고 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대는 숨을 들이쉬면서 자신을 안내해 주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이용할 수 있다.

'나는 도착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거기 있는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대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자신의 존재다.
따라서 그대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해야 한다.
그대의 집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대의 마음이 몸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리고 미소를 지으라.

그러면 그대는 집에 있게 될 것이고, 그대의 집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그대가 찾고 있는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이곳에 서 있음을 느낀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지금 흔들림 없이 살고 있다.'

그대는 지금 이 순간 삶을 만나고 있다.
그것이 그대가 앉아서 명상을 하는 목적이다.
붓다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라.
다른 어떤 것,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라.
그대 자신이 되라.
그대가 앉은 자리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으라.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는 결코 그대의 생각 속에 있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것은 걱정으로부터의 자유,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자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다.


그대는 행복을 나중으로 미룬다.
하지만 나중에도 결코 행복은 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대가 따라야 할 원칙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 틱낫한,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