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 이야기

생각버리기 연습

딸기라때 2013. 10. 11. 12:39

 

 

 

[생각버리기 연습] 중에서

-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인간의 세 가지 기본 번뇌

분노, 탐욕, 어리석음.

 

두 사람이 서로 사귄 지 얼마 되지 않는 사이라면, 서로에게 무척 신선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모습이 신선할 때에는 새로운 자극에 대해 가슴이 두근거린다. 따라서 상대의 헤어스타일이 조금만 변해도 알아차릴 수 있고, 상대의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재미가 없나?’하고 걱정하며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상대방에 대한 정보에 익숙해지게 된다. 사실 연인의 얼굴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계속 보고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 시점이 우리가 연인에게 싫증났다고 하는 순간이다. 상대로부터 같은 종류의 정보가 계속 입력되면, ‘언제나 똑같아...이런 자극은 이제 지겨워’ 라는 기분이 들면서, 다른 새로운 자극을 구하게 된다.

 

이런 경우, 노골적으로 다른 이성에게 달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뇌 속의 연인에게 달려간다. 뇌속의 연인은 이성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걱정거리이다. 이제 눈앞의 연인에게서 떠난 마음은 뇌속의 새로운 연인에게 열중하며 그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자기 뇌속으로 더욱더 깊이 도망칠수록 연인에 대한 흥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싫증을 느끼는 속도가 조금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린 사람도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싫증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럼, 이제부터 번뇌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우리는 항상 눈, 귀, 코, 혀와 같은 신체의 일부분이나 의식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고 있다. 이런 정보와 자극에 반응하는 마음의 충동 에너지 중에 가장 큰 세 가지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다.

 

우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보에 대해 ‘좀 더, 좀 더’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충동 에너지를 탐욕이라 부른다. 누군가에게서 마음에도 없는 입에 발린 칭찬을 들으면, ‘좀 더 듣고 싶다, 좀 더 듣고 싶다’라고 자꾸 원하게 되는 마음의 에너지가 활성화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 않다’라고 반발하는 마음의 충동 에너지는 분노이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불쾌해지면, ‘이런 말은 듣기 싫다’라고 불쾌한 대상을 밀어내고 배제시키려는 분노의 번뇌에너지가 활성화된다. 이런 경우의 분노는 일상에서 우리가 말하는 분노보다는 그 의미가 폭넓다. 단순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도,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도,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긴장하는 것도 원인은 모두 하나이다. 바로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연료가 되어 타오르는 충동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반발의 힘이 작용한다면, 그것은 분노라 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이든 일단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게 되면, 분노의 어두운 번뇌 에너지가 증폭되어 스트레스의 뿌리가 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기 쉬운 인격이 만들어진다.

 

앞에서 마음의 정보처리과정에는 계속 잡음이 끼어든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정보가 잡음이 되는지를 생각해보자. 강하게 갈망하고 분노하는 번뇌와 함께 깊이 새겨진 정보는 마음속에서 강한 집착을 낳고 몇 번이나 되풀이 되면서 긴 메아리를 남긴다.

누군가가 자신의 욕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어 화가 나면 강한 자극과 함께 분노가 마음깊이 새겨진다. 잠시 동안 ‘그런 말을 하다니, 너무 하쟎아.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나를 경멸하면 어쩌지?’라는 괴로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정보다 몇 번이나 반복되어 새겨지고 나면, 마음의 메인 메모리 일부를 차지해버려 다른 중요한 정보처리를 방해하고 만다. 이런 분노는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일단 한 번 마음에 번뇌의 힘으로 새겨진 정보는 계속 잠재되어 남아 있다. 잊혀진다는 것은 의식에 의해 그 정보가 반복되어 살아나는 빈도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즉, 너무나 희미해져 의식화될 수 없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사실 상 마음의 흐름에 섞여 계속 영향을 준다. ‘그런 말을 하다니, 너무하쟎아.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면 어쩌지?’하는 생각들은 희미하게 계속 영향을 주면서 너무 빠른 속도로 다시 생겨났다가 사라져간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 잊혀진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 채 괜스레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처럼 무의식에서 일어나는(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각은 일종의 방아쇠가 되어 연달아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 일을 실패하면 어쩌지?’와 같은 사고들이 연쇄적으로 빠르게 일어나며 마음속에 들끓게 된다. 이렇게 생각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마음속으로 계속 혼잣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의 메인 메모리는 헛된 잡념으로 가득 차게 된다 .....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보거나 듣거나 만지고 있지만’ 실제로 머릿속의 메인 메모리는 다른 ‘잡음’을 처리하느라 바쁜다는 것이다. 당연히 머릿속에 신선한 정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원인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의 잡음이 현실 감각에 완전히 승리할 때, 사람들은 둔해진다. ..... 눈앞에 일어나는 일은 지나치게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에 별 볼일 없게 느끼고 부정적인 생각이 주는 자극에 휘둘린다. 우리 마음은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고병, 즉 ‘생각병’이다. ..... 눈앞의 것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자극을 구하려는 마음의 충동에너지를 어리석음이라 한다. 상대의 이야기에 싫증을 느끼게 되면, ‘지루해, 무시해버리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헤매다가, 결국은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된다. 바로 이 상태가 무지의 번뇌이다. 이런 경우 무지는 교양이 없다든가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스스로의 의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사고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의 일부를 혹사시키며 생각을 많이 하게 될수록 신체와 마음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알기 어려워지고 무지해진다.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 변화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같은 얼굴이군, 지루해...’라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면,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에도 생각에만 빠져들고 만다. 늘 자신만의 생각에 틀어박힌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