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 이야기

나의 빈자리는 어떨까.....

딸기라때 2012. 9. 27. 20:12

그의 빈자리
 
 나와 같이 입사한 그는 여러모로 나의 경쟁상대가 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그는 부장님께 불려가 질책을 받았습니다.
 
 “자네, 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나! 어?”
 
 “그게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그는 말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뒤통수만 긁적댔습니다. 부장님이 홧김에 던져 버린 서류를 그는 주섬주섬 챙겨듭니다.
 
 “또야? 왜 저러고 사는지 원.”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조차 초라한 그의 뒤에 대고 한두 마디씩 거듭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된통 당하고 나가선 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쟁반 가득 커피를 뽑아들고 와 돌렸습니다.
 
 “자, 커피타임입니다.”
 
 나는 그런 그가 한심하기까지 했습니다.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 주제에 무슨 잔정은 그리도 많은지, 잔업 걸린 후배들 치다꺼리를 하느라고 퇴근시간을 넘기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그런 그가 휴직계를 냈습니다. 아내가 큰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박 주임 그동안 고마웠어. 입사동기도 많지 않은데 끝까지 같이 있지 못해서 미안해….”
 
 그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작별을 아쉬워했지만, 나는 의례적인 인사 외엔 나누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가 회사를 그만둔다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게 없을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빈자리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큰 것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마시던 향긋한 커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책상 위의 컵들엔 얼룩이 남은 채 먼지만 쌓여갔습니다. 휴지통엔 휴지가 넘쳤고, 서류들은 뭐가 어디에 있는지 뒤죽박죽 됐으며, 사람들은 점점 짜증난 얼굴로 변해 갔습니다. 사무실에 가득하던 여유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나는 문득 김주임이 끓여다 주는 커피가 그리워졌습니다. 슬그머니 그의 빈 책상으로 다가갔을 때 그가 쓰던 책상 유리 속 작은 메모지의 글 한 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내가 편할 때 누군가가 그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때 누군가는 편안할 것이다.’
 
 
 어느 조직에나 그 구성원 중에는 꼭 필요한 사람과 있으나마나한 사람, 그리고 절대 필요없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실은 늘 넘쳤던 동료. 김 주임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편안함을 주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음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습니다.
 
 (출처 : 『TV동화 행복한 세상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