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상사와 근무하고 있다! YES vs NO
자기네 회사에는 하급자에게 함부로 하는 권력자들이 별처럼 많다고 하소연하는 직장인들이 그야말로 별처럼 많다. 부하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거나 들어도 대놓고 무시하는 상사, 가끔 대꾸라도 하면 모욕적인 말을 쏟아내는 상사들이 즐비하다는 방증이다. 이제 이런 정도의 상사를 참아내는 건 사회생활의 기본 의무 사항쯤이 됐다. (중략)
직장인 A는 그런 상사와 일한다. A는 상사 앞에서는 듣기만 하고 입은 닫고 살았다. 상사와의 대면을 가급적 피하려고 애쓰며 지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방식으론 한계가 있었다. 자신도 견디기가 어려웠고 업무적으로도 문제가 생겼다.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상사를 위해 A는 주말에도 함께 산에 가줬다. 겨울에는 상사가 좋아하는 보드를 타러 평일 밤이나 주말에 스키장을 가준다. 자신의 취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상사가 원하는 것에 빠르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맞춰주다 보면 관계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그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불행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온전히 상사에게만 맞춘 삶을 살았는데도 상사를 피하던 시절과 차이가 없었다. 상사가 구제 불능의 뻔뻔한 인간이기 때문일까. 관계의 역동 측면에서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런 결과에는 A가 기여한 면도 있다. A의 상반된 두 가지 접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같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A의 극과 극 두 대처법은 두 가지가 아닌 같은 대처법이었다. 나는 없고 너(상사)만 있는 관계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러니 결과가 같은 것은 당연하다. (중략) A는 언제나 상사의 존재를 중심으로 반응하는 도구였지 개별적인 한 존재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상사가 A를 개별적 존재로 인지하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A 스스로가 적극적인 심리적 공모자가 되어준 것이다.
자기 경계를 허물면서 상대방의 도구가 기꺼이 돼주는 사람의 개별적 희망과 기대는 번번이 좌절될 수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까지 애쓰면 그래도 고마워하겠지, 내 노력을 알아주겠지’ 하는 A의 기대가 물거품이 된 건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자신을 스스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은 상대방의 인식 속에서도 사라진다. 회피도 충성도 답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A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해야 한다. 그가 나를 의식할 수 있도록 내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너(상사)도 있지만 나도 있는 관계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진다. 무모하거나 위험해 보이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이 유일하고 근원적인 방법이다. 그의 인식 속에 내 존재감이 생겨야만 그와 나의 관계에서 일관되던 그의 일방성에 제동이 걸린다. 그가 나를 의식해야 그의 일방성이 주춤하기 시작한다. 비대칭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대칭적이고 상호적으로 서서히 변한다. (중략)
“그래도 계속 만나야 하는 사이인데 그런 상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고 묻는다면 다시 말할 것이다. 질문이 잘못됐다. 상사를 상수로 놓고 나만 변수로 취급하는 불평등한 인식의 구도 안에서 내가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상사가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질문으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내 삶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일까.”
상사를 파악하고 살피는 것도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다. 상사가 아니라 그 어떤 관계도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관계의 목적일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이 부모 자식의 관계라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일 때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다.
글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ㅣ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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