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 사람과 결혼했을까
-부모와 배우자-
가족에 대해 물었을 때 가을님은 잠시 호흡을 멈추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요즘 남편이랑 자꾸 싸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에는 남편에게 회사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았더니 '그 사람들 입장은 이럴거다,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등 잔소리를 늘어놓고, 정 힘들면 회사를 그만 다니라고까지 하는 바람에 큰 싸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얘기 좀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매몰차게 잘라내는 느낌이 들어 가을님은 무안하고 서운했다고 하셨습니다.
결혼 전 남편의 어떤 점이 좋았느냐는 질문에, 결혼 전에도 남편이 자상한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말이 많지 않고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은근히 배려해 주는 사람이었다고 하셨죠. 누구에게나 잘해주는 사람보다 알고 보면 속정 깊은 남자라서 끌렸다고요. 들어보니 남편분은 다정하거나,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는 아니고, 감정을 많이 드러내거나 표현을 잘하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내의 기준을 알아주고 편 들어주는, 며칠 전 가을님이 바랐던 그런 남자는 아닐 수 있겠네요.
결혼 전 가을님은 착한 남자에게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고 하셨죠. 좀 지루해 보이고 재미가 없었다고요. 한없이 친절하고 헌신적인 남자보다는 남편처럼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강해 보이는 남자에게 마음이 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고 배우자를 선택할 때 어떤 이유로 끌리는 걸까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나의 부모와 가족이 어떤 분들이었나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어떤 여성은 자기 아버지를 꼭 닮은 사람을 선택합니다. 폭군 같은 아버지를 둔 딸이 절대 엄마처럼은 안 살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곤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익숙한 사람과 환경에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유익한 변화보다 고통스러운 친숙함을 선택하는 것은 상담 장면에서 흔히 목격되는 현상입니다.
어린 시절 충족되지 않은 결핍과 갈등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이번에는 제대로 해결해 보고자 하는 무의식적 동기가 작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절대 권력자였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가슴 깊이 남은 여성이 아버지와 비슷한 이성에게 사랑받고자 합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웠는데 아버지 같은 남자를 선택하니, 눈이 멀어도 그렇게 멀 수 있나 이상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무의식의 힘입니다.
때론 정반대의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랑은 완전히 반대 성향인 사람을 선택하는 거죠. 그럼 행복해질까요? '아버지와 정반대'라는 점에만 마음이 쏠려 다른 측면을 균형 있게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을님의 아버지는 집안에서 목소리가 크고, 엄마를 무시하는 독재자였다고 했습니다. 철이 들면서 아버지가 너무 싫었고, 엄마는 항상 불쌍하면서도 답답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대체 왜 저러고 사나.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여자. 그런 엄마가 안타까웠고, '여자로서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엄마를 닮은 가을님도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의 부부 관계가 딸인 가을님에게 그림자를 남겼네요.
이성을 만나 사랑에 빠질 때는 매력적인 면만 보이기 쉽습니다. 사람의 성격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강하고 주도적이어서 매력적이었던 면이 뒤집어 보면 무섭고 냉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지금 가을님이 원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항상 내 편에 서주는 남자라는 옵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남편의 지적인 면, 강하고 리더십이 있어 믿음직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테고, 그게 가을님에게 중요했던가 봅니다.
남편에게 아버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당연히 아닙니다. 가을님이 어머니와 다른 것처럼요. 남편이 아버지와 비슷하게 느껴질 때, 가을님은 어머니와 다른 반응과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변하듯, 관계도 결혼 생활도 유기체처럼 반응하고 변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팔자를 닮지 않을 선택권은 가을님에게 있습니다.
출처: 이경애/ 마음이 마음대로 안될 때/ 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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