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 이야기

(마음의 건강)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

딸기라때 2013. 11. 5. 11:20

 

미움이 흩뿌려진 편지를 보내고

 

 

 

 

 명예를 가볍게 여기라는 책을 쓴 사람도 그 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고 했던가요?
 


세상에는 어떤 절대적 진리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누군가 ‘논리적으로 당신의 주장도 진리가 아니다’고 토를 달면 언짢아한다고 했던가요?

모두 모순(矛盾)을 얘기하는 것이겠지요. 제 눈의 안경은 제 눈을 못 보기에 생기는 일이겠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토요일에 두 통의 편지를 보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 편지에서 누군가를 미워하지 말라는 그 글에 모순적이게도 미움의 찌끼가 끼어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어 미리 급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밤늦게 귀사해서 일을 하다가 편지를 보내려고 다시 읽는 순간 글의 켜켜이 숨어있는 미움의 파편들을 발견했지요. 글을 수정하고 나서 보냈는데 다음날 새벽에 수정된 글이 아니라, 첫 글이 발송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부랴부랴 다시 보낸 것이지요.

첫 편지에서 모순을 발견한 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는 “네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편지에서 언급한 대로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델포이의 신전 상인방에 새겨진 글귀이죠.


소크라테스는 하나를 알고 열을 말하는 소피스트들에게 이 말을 썼습니다. ‘네 자신을 알라’. 사람이 얼마나 부족한지, 네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라고. 어쩌면 토요일 편지에서도 일부 네티즌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제 모순을 발견했고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毒杯)를 마시고 숨지기 전에 “악법도 법”이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1930년대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지어낸 말이 한국과 일본에 퍼져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일본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도 이 부분이 진실인 양 소개돼 있지요.


소크라테스는 대신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라고 말하고 독배를 마셨습니다. 크리톤은 친구이자 제자이고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입니다. 저는 평생 자신을 되돌아본 현자(賢者)가 숨지는 순간에 증오가 아니라, 고마움과 사랑을 말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유한성을 알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더불어 살 이유를 찾게 된다는 것이겠지요? 마침 오늘(4월27일)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지 2408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하루라도 누군가가 미워질 때 화를 내기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놓치기 아까운 봄날이지요? 사랑하고 격려하기 좋은 날이지요?

 

미움을 다스리는 방법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나는 내게는 가장 소중하지만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고 되뇐다.

●미운 사람이 왜 미운지를 생각한다. 그 이유를 상대편 및 제3자의 처지에서 다시 생각한다.

●미운 사람과 자신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한다. 미운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미운 이유가 나에게는 없는지 되돌아본다. 무의식이 억압한 ‘자아의 못난 부분’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열등감이 미움의 원인이라면 열등한 부분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본다. 대부분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미운 사람에게 자신의 열등한 부분에 대해 유머를 통해 말해 본다. “나 같은 추남이 이 부장과 함께 일하게 돼 즐거워” 식으로.

●미운 사람과 대화할 때 울컥 성미가 치밀어 오르면 숨을 천천히 쉬며 호흡에 집중한다.

●특정인이 미운 것이 특정인 때문임이 명확하든지, 아무리 노력해도 미운 사람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증오를 유지하면 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한다.

- 이성주의 건강편지(2009. 4. 2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