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담담한 자비를 키운다.
[생각 버리기 연습] 중에서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면 그의 고통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미 앞에서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일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다면, 그것은 친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번뇌의 자극으로 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친척이 죽었을 때 계속 슬퍼하며 우는 것은, 죽은 사람이 그리워서 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으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격렬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동안 부정적인 파동이 계속 발산되므로 결국 자신에게 해롭다. 그리고 죽은 사람 때문에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므로, 이런 슬픔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죽은 사람을 공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나 슬프게 우는 것이 아니라, 자비심을 가지는 것이다. 자비의 명상을 하면서, 죽은 사람이 편히 쉬도록 기도하는 것이 망자에게 더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죽은 사람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다 보면 평온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
언제까지나 슬픈 감정에 빠져 지내다보면 마음엔 어느새 분노라는 괴로움이 쌓이고 몸도 약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슬픔만이 보일 뿐 ‘진정으로 죽은 자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게 된다. 옛날에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집착해,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반발하면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렇게 계속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분노의 파동을 발산하면 아마 죽은 자에게 닿을 수 있는 에너지도 분노의 파동 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 망자를 위해 좋을 것 같은 에너지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진정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절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진정한 친절을 베풀려면, 나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종종 ‘자비’라는 개념이 잘못 오해되어 단순히 다른 사람을 위해 슬퍼하거나 우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때에도 자신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려는 번뇌의 실을 발견해 잘라내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자기감정에 빠져 한탄하고, 친절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자연히 마음속에 자비의 마음밖에 없게 되므로, 오로지 상대가 평안해질 수 있는 방법만 찾게 된다. 이렇게 되려면,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친절해 보이려는 자기를 버리고 담담한 자비심을 길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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