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중독을 파악하라

힘든 생각이나 감정을 마주할 때면 도피처로 도망치듯 무언가에 몰두해서 감각을 무뎌지게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때 우리가 도피처로 삼을 만한 것들은 일상에 교묘히 녹아 있다. 중독이지만 중독의 탈을 쓰고 있지 않은 ‘숨겨진 중독’이 바로 그것이다. (중략) 물론 이러한 숨겨진 중독이 알코올이나 마약, 도박처럼 짧은 시간 내에 삶을 파괴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즉각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서서히 일상을 잠식한다. (중략)
올바른 중독의 다른 말은 자기 돌봄
다만,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숨겨진 중독은 올바른 중독과 구별되어야 한다. 올바른 중독은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올바른 중독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하나는 문제가 되는 상황을 회피하려는 목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잠깐 중독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한 뒤에는 집착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운동이나 일처럼 긍정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라고 해도 삶의 균형을 깨뜨리는 수준이라면 병적인 중독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일상의 균형을 잃지 않는 선에서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을 때만 올바른 중독이다.
올바른 중독의 다른 말은 자기 돌봄(Self Care)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에 걸맞는 것을 실천하는 행위인 것이다. 자기 돌봄 운동의 선구자 제니퍼 루덴은 잘못된 중독으로 얻어진 쾌락을 그림자 위안(Shadow comforts)이라고 했다. 위안을 느낀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문제를 회피하려는 것에 불과한 거짓된 위안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같은 행동이라도 건강한 자기 돌봄이 되기도 하고 숨겨진 중독이 되기도 한다. 이 둘을 구별하려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보다 그 행동을 하는 의도가 더 중요하다.
영우 씨는 3개월 전 이별했다. 그 이후로 주말이면 집에 틀어박혀 하루에 다섯 편 이상의 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괴로움에 술을 마셨지만, 더 이상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져 버린 후에는 오직 영화를 보는데만 몰두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잠시 고통에서 벗어난 듯 했지만 한 편이 끝나면 다시 힘든 감정과 생각이 몰려왔다. 그는 자신을 무감각하게 만들기 위해 장르에 상관 없이 어떤 영화든 닥치는 대로 보았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서까지 영화를 반복해서 보다가 겨울 지쳐 잠들곤 했다. 이별 후부터 그에게 월요일 아침은 일주일 중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었다.

한편 서연 씨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다. 수시로 SNS를 확인하고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재미있는 삶을 위해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뿐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스마트폰이 고장난 뒤에야 서연 씨는 자신이 스마트폰 없이 지내는 것을 무척이나 괴로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혼자라는 느낌에 공허감과 불안감까지 덮쳐왔다. 애써 외면했던 무언가가 자신을 잠식할 것만 같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가 떠오를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두려운 감정이 밀려올까 봐서일까? 서연 씨는 자신이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영화를 통해 감동을 느끼고 삶의 활력소를 얻었다면 그것은 영우 씨에게 진정한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계적으로 영화를 보았기에 그 위안은 결국 거짓된 위안에 지나지 않았다. 서연 씨도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자신을 돌보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허감을 지우기 위해 관계에 집착했기에 그림자 위안에 불과했다.
나를 위한 행동인가, 나를 해치는 행동인가?
자기 돌봄과 숨겨진 중독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나에게 진짜 위안이 되어주고 진정한 행복감을 주는가? 아니면 단지 순간적인 도피처에 불과한가?” 이 단순한 질문은 우리가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고, 내면 깊숙이 자리한 진실을 마주하도록 하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자신과의 관계가 흔들리면 숨겨진 중독에 의존하게 된다. 나를 위한 행동이라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지 못해 필사적으로 무언가에 매달린다. 또한 내면의 불안과 결핍에서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를 그럴듯하게 속이곤 한다. 자신이 보잘것없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질 때, 스스로 삶을 책임지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렸을 때, 나의 불완전함을 거부할 때, 나를 돌보는 것을 게을리할 때 우리는 숨겨진 중독에 잠식된다.
수치심은 이러한 과정의 중심에 있다. 자신을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다는 수치심이 우리를 숨겨진 중독으로 이끈다. 더 큰 문제는 이 숨겨진 중독조차 알코올, 마약, 도박 중독처럼 또 다른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수치심이 수치심을, 중독이 또 다른 중독을 부르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다.
심리학자이자 명상가인 타라 브랙은 “첫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지만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라고 했다. 삶에서 불가피한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그 고통을 회피하려 숨겨진 중독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치심의 덫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삶이란 나와의 관계에 균열을 겪고 그 큼을 메우면서 더 단단한 연결로 나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틈을 메우는 첫걸은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과 생각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에 온전히 다가설 용기를 낼 때 자기 치유의 문이 열린다.
[나와 친해지는 연습/ 최윤정 지음/ 현대지성]
'세상사는 이야기 >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건강자료실]자기돌봄: 자기달래기 (0) | 2025.06.07 |
---|---|
[마음건강자료실]게으른 완벽주의자 (0) | 2025.05.16 |
[마음건강자료실]살던 대로 사는 거 지겹지 않니? (0) | 2025.04.18 |
[마음건강자료실] 괜찮아 (0) | 2025.04.02 |
[마음건강자료실]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나에게 관심이 없다. (0) | 2025.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