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대로 사는 거 지겹지 않니?
행복해지기를 막는 내 안의 감시자
우울과 불안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놓여 있는 상태를 괴로워하면서도 익숙하게 젖어 있는 그 부정적 감정에서 빠져나오기를 두려워합니다. 이들에게 비록 행복과 기쁨의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이 낯선 손님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모릅니다. 긍정적 감정을 편하게 누리며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게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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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큰 불행과 고통에 대적할 만한 큰 행운과 쾌락이 아니라면 오랫동안 유지해온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낯선 경험에 자리를 내주길 꺼립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복은 나의 거대한 비극과 등가 교환이 어려우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 같은 행복에 휘둘리고 싶지 않습니다. 잠깐 행복하다가 또다시 우울과 불안이 찾아올 것이 뻔한데 바보처럼 마음을 내줘서는 안 된다고 다짐합니다. 이는 긍정정서에 대한 일종의 정서조절전략으로 ‘가라앉히기(dampening)’라고 합니다. 가라앉히기 전략은 ‘이런 즐거운 기분은 어차피 오래가지 않을 거야’ ‘이런 행복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같이 긍정정서를 하향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인지적 방략으로, 행복이 눈앞에 다가오면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의 비관적 전망과 부정적 해석은 가라앉히기 전략으로 유지됩니다. 이들은 실상 행복해지고 싶다면서도 행복해지기를 거부하는 지독한 내면의 감시자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경험은 선이 아니라 점으로 찍힌다
감시자는 완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면 다 의미 없어!’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통제감을 획득하고자 일관된 자기개념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매 순간의 경험도 일관되게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드문 행복보다는 흔한 불행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좀더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경험은 선이 아니라 점으로 쓰입니다. 마음챙김으로 매 순간 주의를 두어 관찰하다 보면 나의 외부와 내부에서 많은 경험이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순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울도, 불안도, 기쁨도, 설렘도 짧은 순간을 스쳐가는 점일 뿐입니다. 꽤 길게 지속되는 어떤 경험도 매 순간 동일한 형태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내가 있을 뿐입니다. 나에게 익숙한, 나의 자기개념에 부합하는 경험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나는 평생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점점이 모여 있는 경험을 멀리서 보면 길게 이어진 선으로 보이고, 내 인생은 비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분명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흐름을 역행하기가 너무나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울과 불안에 빠진 사람들이 이 거대한 흐름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의 범위를 짧게 설정해야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서 긴 시간의 스펙트럼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짧은 순간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직전까지 우울했더라도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를 만나 실없이 웃으며 떠들고, 밀린 숙제를 하면서 성취감을 느껴도 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우울한 나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우연한 사건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행동을 실행하기로 선택한 자신을 마음껏 대견하게 여기기 바랍니다. 남들에게는 보잘것없는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나에게는 죽음을 무릅쓰는 용기가 필요했음을 기억합니다. 이 죽음은 우울과 불안으로 점철된 익숙한 내 정체성의 일부를 내려놓는 심리적 죽음이기도 하고,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허용하는 심리적 소생이기도 합니다.
우울과 불안을 이기는 작은 습관들 / 임아영 / 초록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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