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등산 취미

향로봉-승가봉-청수동암문-부왕동암문-삼천사 탐방센타

딸기라때 2014. 4. 6. 21:20

1. 코스 : 정진매표소 - 향로봉 -사모바위 - 승가봉 - 청수동암문 - 부왕동암문 - 삼천사탐방지원센타

2. 일시 : 2014년 4월6일(일)

3. 날씨 : 맑고 청명한날씨에 바람세차게...

4. 산행 후기

* 들머리 : 정진 매표소(수리초등학교)

* 날머리 : 삼천사 매표소

 

청명한 날씨를 보인 4월 첫째 주 휴일이자 한식(寒食),북한산 푸른 하늘 아래 만개한 진달래를 벗삼아 향로봉을 거쳐 승가봉,청수동암문,가사당암문,삼천사 계곡을 거쳐 휴일 하루를 보냈다. 세찬 바람이 불어댔지만, 북한산은 완연한 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북한산성의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 고갯마루에 위치한 암문

조선 숙종 37년 (1711년)에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만든 8개의 암문(暗門) 중 하나로, 현재 백화사가 위치한 의상봉길에서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가사당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는 마련하지 않았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아올리고, 그 위 천장 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据式)이라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가사당암문 아래에는 국녕사(國寧寺)가 자리잡고 있다. 국녕사는 북한산성의 축조, 수비, 관리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승병이 주둔한 승영사찰(僧營寺刹)이었는데, 가사당암문의 수축과 방어를 담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까닭에 가사당암문은 국녕문(國寧門)으로도 불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이후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고려사》에는 1027년(고려 현종 18) 6월에 이 절과 장의사(莊義寺)·청연사(淸淵寺)의 승려들이 쌀 360여 석으로 술을 빚은 것이 발각되어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481년(조선 성종 12)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한때는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따오지 않았나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승병들의 집합소로 활용되었으나 이후 불에 타 없어졌다.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자리에 진영이 중창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60년에 중건하고 1978년 성운이 중수했으며, 1988년 미얀마에서 부처 사리 3과를 얻어와 석종탑을 세우고 모셔 두었다. 1994년 11월에는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을 설립하고, 1996년 12월 30일 지하 1층, 지상 3층의 2동으로 된 복지관을 준공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보전과 산령각·선실·요사채·인덕원복지관 등이 있다. 이 중 대웅보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이며,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신중탱화·지장보살 등이 함께 모셔져 있다. 산령각은 정면 2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다른 사찰의 산신각보다 규모가 커서 북한산의 산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이 절을 ‘산신이 보좌를 튼 절’이라고도 부른다.

 

유물로는 대웅전 위쪽에 있는 마애석가여래입상이 보물 제657호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양각과 음각을 섞어 조각한 독특한 작품이다. 전체 높이는 3m이고, 불상 높이는 2.6m이다. 그밖에 경내에는 대형 석조(石槽)와 대지국사(大智國師) 목암찬영(木庵粲英:1328∼1390)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