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건강

부모자녀관계(편애상처 - 4)

딸기라때 2016. 3. 6. 09:35

●사랑의 기술 “불공평하게 공평하라”

 

편애의 해악을 절감했다면 마음 속의 저울추를 감추고 어떻게 자식들을 공평하게 대할지 고민스러울 것이다. 그 결과 많은 부모들은 “오빠와 나 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라는 질문에 “똑같이 좋지”라는 모두에게 실망스런 대답을 내놓는다. 자식들 사이의 본능적 경쟁 관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육아서의 고전 ‘천사 같은 우리 애들 왜 이렇게 싸울까?”(원제 ‘Siblings Without Rivalry’ 아델 페이버, 일레인 마즐리시 지음)는 불공평하게 공평할 것을 제안한다.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평가해서 그것들 각각을 편애하라. 어느 아이나 자기가 제일 사랑 받는 아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엄마는 오빠와 너를 똑같이 사랑해”라고 말하기보다는 “이 넓은 세상에 너는 딱 한 명밖에 없잖아. 너처럼 생각하고, 너처럼 느끼고, 너처럼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엄마는 네가 내 딸인 게 너무 좋아”라고 말해 아이들 각자가 부모에게 특별한 존재로서 사랑 받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배에 타고 있다가 한꺼번에 다 물에 빠지면 아빠는 누구를 구해줄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제일 어린 사람”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 식으로 대답하지 말고 “그거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구나. 아빠한테는 너희 모두 다 특별하거든. 한 명 한 명이 다 다르니까”라고 대답하는 게 현명하다.

 

아이들을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는 건 누구나 아는 육아 상식이 됐다. 하지만 칭찬할 때 하는 비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넌 참 숙제를 빨리 마쳤구나. 오빠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데” 같은 말은 오빠 안 듣는 데서라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칭찬은 한 아이에게 다른 형제를 무시하게 만드는 특권을 줄 수 있다. ‘아빠는 오빠를 별로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여기게 될 뿐 아니라 자기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다음 번에 잘하지 못하면 남몰래 비난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언제나 일대 일의 관계로만 하는 게 좋다. “동생은 한 번에 다 치는 곡을 저는 한 달이나 연습해야 했어요. 저는 피아노에 재능이 없나 봐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대신 넌 운동을 잘하잖니” 같은 칭찬은 답이 아니다. “동생과는 상관 없어. 네가 피아노를 칠 때 느끼는 너의 즐거움이 중요한 거야”라고 말해 일대 일의 단독관계를 형성하는 편이 낫다. “넌 착하잖니” “넌 대신 다른 걸 잘하잖니”처럼 아이를 고정된 역할의 틀 안에 집어넣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

 

한 아이를 더 사랑하는 마음은 잘못도 아니고 교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모는 “마음에 쏙 드는 한 자식에게 쏠리는 자신의 열정으로부터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저자들은 “아이는 부모가 항상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생각한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며 “각각의 아이와, 특히 덜 사랑하는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부모와 함께하는 개인적인 순간이 가져다 주는 따스함과 친밀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아이와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다른 형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여동생은 여기 없는데도 엄마의 마음을 빼앗아가는군’이라고 생각하게 해선 안 된다.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완전하고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의 책무다. 저자들의 말처럼 “똑같이 사랑 받는 건 뭔가 사랑을 덜 받는 것이지만, 특별한 존재로서 각기 다르게 사랑 받는 것은 필요한 만큼 사랑 받는 것”이다. 아이들 각자가 필요로 하는 사랑을 채워주는 것이 공평한 사랑이며, 단지 공평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는 것을 줄 필요는 없다. 부모로부터 감탄의 눈길을 받아본 적 없는 유년기는 얼마나 서럽고 아픈가. 자식들간 우애는 부모가 결정한다. 불공평하게 공평한 사랑의 기술이 필요하다.

 

출처: 한국일보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