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나의 이야기

사랑이 물든 손

딸기라때 2016. 12. 1. 16:33



어느 산골 마을에 할머니와 초등학생인 손녀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일찍 세상을 뜨고 아들은 건설 현장에서 잡일꾼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온종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캔 뒤

밤이 새도록 나물을 다듬어 다음 날 장터에 내다 팔았습니다.

 

어린 손녀딸은 할머니가 캐오는 산나물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숙제하고 나면 할머니와 같이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나물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손톱 밑의 까만 물은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상담 때문에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모시고 갈 분은 할머니뿐이라 걱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할머니의 허름한 옷, 구부러진 허리,

손의 까만 물을 보는 게 정말 싫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손녀딸은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습니다.

", 할머니, 선생님이 내일 학교 오시래요."

할 수 없이 말하긴 했지만, 손녀딸은 할머니가

정말 학교에 오시면 어쩌나 했습니다.

 

다음 날 오후,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로 갔습니다.

선생님은 할머니의 두 손을 잡으면서 손녀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은이 할머니께 효도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그 순간 손녀딸은 와락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었고 피가 흐를 듯 생채기로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할머니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내내 표백제에 손을 담그고 철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으셨던 것입니다.  

 

나에게도 그런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홀로 시골집에 살면서 간혹 찾아오는 손주가 '노인 냄새' 난다고 할까 봐

새벽부터 일어나 몸을 씻고 또 씻었던 그분.

당신 쓸 용돈 아껴두었다가 어린 손녀 호주머니에 몰래 넣어주며

과자 사 먹으라고 속삭이던 그분.

세상에서 내가 가장 예쁘고, 가장 자랑스럽다 말해주던 한 그분.

 

그렇습니다. 지금은 가슴에 묻어둔 이름, '할머니'...

당신이 계심으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헌신이야말로 사랑의 연습이다. 헌신으로 사랑은 자란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