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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자료실)자전거 타는 법과 인생의 차이

딸기라때 2019. 6. 8. 22:47


 

자전거 타는 법과 인생의 차이

 

서울 용산에 있는 미술관에서 청춘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보고 왔다. 작품마다 우울함과 자유로움이 짙게 배어 있었는데, 특히 ‘마샤 데미아노바’라는 러시아 출신 사진작가의 작품이 내 발길을 가장 강하게 잡아끌었다.

 

사진의 분위기가 묘했다. 수영복 차림의 젊은 여성이 통나무 위에서 맨땅을 향하여 다이빙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이건 맨땅에 헤딩하기를 표현한 건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자세히 보니 작품명은 이었다.

 

그제야 감이 왔다. 어디로 향할지, 어는 곳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청춘들의 고외가 사진 속에 스며 있는 듯했다.

 

순수와 열정, 청춘과 젊음처럼 뜨겁고도 투명한 단어들은 ‘나이 듦’의 의미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간의 풍화를 견디는 일이다. 스스로 터득한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견디는 일이다.

 

삶이라는 비바람 속에서 한때 내 일부였던 것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와 수분을 잃고 가루가 돼 흩날리는 광경을 덤덤하게 바라보면서, 우린 그렇게 나이라는 것을 먹는다.

 

어린 시절엔 나이 먹는 일이 자전거 타는 법과 엇비슷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몇 번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멍이 들더라도 부지런히 삶의 페달을 밟으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살면서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교훈이 쉽게 잊히지 않듯이, 자전거 타는 법도 한번 배우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자전거 타는 방법은, 마음은 잊어도 몸이 기억한다. 오랜만에 자전거 안정에 앉아도 페달에 발을 얹고 적당히 힘을 주기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전거를 밀고 나아갈 수 있다.

 

둥근 자전거 바퀴가 땅에 닿아 돌아가기 시작하면 정겨운 바람이 운전자의 곁을 스치고 달아난다. 운전자가 페달을 더 힘껏 밟으며 바람의 결을 느끼는 순간, 길과 사람은 어느새 하나가 된다. 그래서 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자전거를 풍륜이라 칭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세상에 물들어가면서 자전거와 인생에 대한 내 상각은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 언론사 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1년 넘게 낙방을 거듭하던 어느 날, 도서관 자전거 거치대에 주인 없이 수개월째 방치된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난 안장에 뿌옇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페달을 밟아봤다. 집과 도서관을 오갈 때 타고 다니면 좋을 듯했다.

 

체인이 풀린 탓에 살짝 헛바퀴가 돌긴 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어랏, 이게 되네. 몇 년 만에 타도 되는구나. 하하!” 하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도서관을 한 바퀴 돌고 자전거 안정에서 내려오기 위해 엉덩이를 떼면서, 나는 서늘한 진리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자전거 타는 건 정말 쉽지. 자전거를 시행착오와 신체적 고통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 쉽게 배울 수 있잖아. 하지만 먹고사는 일은 다르지. 아무리 많은 학습을 하고 수없이 넘어져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투성이잖아!’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사회의 민낯을 알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의 모든 게 익숙해지거나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팍팍한 현실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일은 자전거 타는 일과 정 반대의 속성을 지닌다.

 

그저 우린 삶의 번민과 슬픔을 가슴에 적당히 절여둔 채 살아온 날들을 추진력 삼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각자의 리듬으로

 

끊임없이 삶의 페달을 밟아가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무너져내리지 않기 위해.

 

 

이기주/ 한때 소중했던 것들/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