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전하는 목소리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 눈으로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보는 것만이 마음보기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예컨데 부모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에게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엄마가 말을 하면 아이들은 거의 100퍼센트 돌아본다. 아빠의 목소리도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다. 아빠의 목소리에는 약 85%의 아이들이 반응한다. 그래서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도 대인 관계 속으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 시각장애를 지닌 아이들 역시 다른 사람의 판단에 대해 앞으로 볼 수 있는 아이들과 동일한 수준의 민감도를 보인다.
인간의 목소리는 매우 풍부한 표현력과 함께 유연성도 지녔다. 덕분에 다양한 어조와 음색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은 물론 광범위한 영역의 창의적이고 특색 있는 표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난 40여 년간 필립 리버만은 목소리의 진화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뇌의 능력 간의 연관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인간과 침팬지에게는 공통적으로 입술, 후두, 목구멍, 폐가 존재한다. 이 기관들을 통해 인간은 다른 영장류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신체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약 10만년전, 인간의 입이 점차 작아지고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혀도 유연하게 진화되기 시작했다. 또 5만 년 동안 목은 길어지고 입은 짧아졌는데, 리버만은 인간이 매일 같이 참여하는 ‘발성 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이같이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목과 입의 진화로 성도(성대에서 입술 또는 콧구멍에 이르는 통로-옮긴이)의 길이가 늘어나면서 꿀꿀거리며 소리만 내던 것에서 노래도 부르고 전화 통화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의 진화에는 대가가 따랐다. 입이 말하는 기능에 최적화되면서 구조상 코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고, 그 결과 후각의 기능은 점차 퇴화되었다. 진화적 관점에서 이 같은 거래로 얻은 것은 매우 컸다. 바로 언어를 얻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관계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곧, 대인 관계는 언어를 통해 가족을 넘어서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발전한다. 또한 언어는 여러 정보가 문화 속에 저장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세대 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조정해 준다. 언어는 우리 안의 판단 장치 속에서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한편, 각자의 판단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인간은 단어와 구문을 처리하고 생성해 내는 데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 뇌가 한창 발달하는 시기에 특정 언어에 노출된 아이는 자연스레 해당 언어를 습득한다. 우리 뇌의 언어 능력은 단순히 언어의 뜻을 이해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은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다양한 어조와 음색을 구분하고 창조해 내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 목소리를 듣고 추론하는 능력은 언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목소리에서 상대방의 의도와 바람, 두려움을 읽어 내며 나이와 성별, 성격을 가늠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목소리의 다양한 어조와 음색을 통해 상대방을 판단한다.
심지어 어린아이는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목소리를 표현된 감정을 처리하고 이에 반응한다. 오리건 사회학습센터의 앨리스 그레이엄, 필립 피셔, 제니퍼 파이퍼는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람의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주고 이때 나타나는 뇌의 반응을 사진으로 찍어 관찰했다. 녹음된 내용은 횡설수설하고 불분명했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극도의 분노에서부터 약간 화난 듯한 느낌, 안정적인 어조, 신나는 분위기까지 다양하게 연출했다. 그 결과, 6개월 연령의 어린 아이들은 수면 중에도 목소리의 감정적인 상태에 반응했다. 이 같은 실험 내용은 ‘잠자는 아기는 무엇을 들을까’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결국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집중함으로써 그들이 나를 수용하는지 혹은 거부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
출처 : 테리 앱터/ 나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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