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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자료실)나이듦을 받아들이는 태도

딸기라때 2022. 12. 18. 11:17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태도

나이 든다는 것은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들, 내 곁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떠나보낼 때가 되었음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이제는 날씬했던 허리와 정열, 모험심, 시력 등이 사라져 가는 것을 그냥 바라봐야만 한다. 젊은 시절 품었던 세계 곳곳을 여행하겠다던 꿈도,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 보겠다던 꿈도 나의 한계에 부딪혀 맥없이 주저앉아 버린다. 질병과 전쟁으로부터 이 시세을 구해 내고 싶다던 젊은 날의 야심찬 이상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는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뭔가 모를 두려움이 안개처럼 깔리고, 이제 더 이상 안전하거나 보장된 그 무엇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중심이 흔들리고 주위의 많은 것들이 흩어져 사라지는 느낌에 문득 소스라치게 된다. 사업을 하다 망한 친구, 불륜에 휩싸이거나 이혼한 친구,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친구도 하나둘씩 생긴다.

게다가 중년기에 접어들면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부모의 부모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이들은 우리의 품을 떠나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면서 우리를 뒤에 남겨 놓는다. 그 전까지는 집안의 우두머리였던 우리에게 아무도 "엄마, 아빠에게 물어봐야지" 하며 쪼르르 달려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집안은 텅 비어 버린다.

그런데 그 사이 전에는 강하고 무섭게 보이던 부모님이 늙고 쇠약해진 모습으로 이제 우리에게 경제적, 심리적으로 의지해 온다. 그러면 우리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삶을 꾸려가고 있다가도 어느새 다시금 부모의 생활 속으로 잡혀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늙고 쇠약해진 부모를 돌보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을 보게 된다. 예전에 부모에 대해 느꼈던 짜증과 원망, 슬픔과 죄책감이 부모에 대한 사랑을 뛰어넘어 다시금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분석가인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혼란을 겪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의 저자 제임스 홀리스에 따르면 우리는 1차 성인기인 12~40세까지 누구의 아들딸, 누구의 엄마 아빠, 어느 회사의 팀장으로서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사회화된다. 그것은 진정한 본성에 따르기보다는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선택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키워진 결과로서의 삶에 가깝다. 즉 진정한 자신에게서 멀어진 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마흔이 되면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오롯이 기록된 과거의 책장을 넘기며, 이제껏 열심히 일궈 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해도, 내가 누구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내가 성취한 게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몰려 온다. 아직도 원하는 것이 많은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에게 남은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만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들은 가버렸고,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애도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처럼 중년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삶을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즉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맡아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봄으로써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저/ 메이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