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건강

(마음건강자료실)막힌 마음의 길을 뚫는 관계의 힘

딸기라때 2023. 1. 18. 05:24

막힌 마음의 길을 뚫는 관계의 힘



상담실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상담을 받으면 정말 마음이 나아지나요? 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인데 어떤 원리로 괜찮아지나요?”

심리 상담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 힘이 드는 과정인 만큼 효과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때 저는 “심리 상담의 효과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연구와 논문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심리 상담은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대화지만 더 깊이 내려가 보면 그 언어 속에 담긴 마음이 오고 가는 대화입니다. 쉽게 말해 심리 상담이란 말과 말이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장면인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심리적 고통감을 느끼는 것은 마음의 길 어딘가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혈관이 막히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마음의 길이 막히면 우울이나 불안 같은 모양으로 문제가 나타납니다. 심리 상담은 막혔던 마음의 길을 뚫어 주는 작업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막혔던 길이 뚫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모양으로 변화가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내담자들과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남편을 보면 화가 나고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에게 원하는 바를 요청해 보고 화를 내 보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욕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화가 사라지지 않아 결국 심리상담소를 찾아갔습니다. 내담자는 남편에게 화가 나는 점이 무엇인지,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한지 상담가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상담가는 더욱 구체적으로 질문하며 내담자의 깊숙한 마음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보면 내담자는 ‘남편의 이런 점을 볼 때 화가 나는구나’, ‘남편의 이런 행동에서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구나’, ‘나는 남편에게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구나’같은 마음이 있었음을 알아차립니다. 내가 깊이 숨겨 두었던 솔직한 마음에 접촉하는 순간이자 내가 나의 마음과 만나는 순간인 것입니다.

상담가는 내담자가 이러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난한 과정을 그저 함께 따라갑니다. 때로는 상담가가 내담자와 동일한 마음을 느끼는 순간에도 마음과 마음이 만납니다. 이런 경우에도 내담자의 막혔던 마음의 길이 뚫리고 화났던 마음이 스르르 풀립니다. 내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자각하고 이해하며 ‘지금-여기’의 자신을 신뢰하도록 돕는 실존주의 상담가 어번 D.얄롬은 자신의 저서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에서 이렇게 신념을 밝힙니다.

“치유하는 것은 관계다, 치유하는 것은 관계다, 치유하는 것은 관계다.”

얄롬의 신념은 심리 상담의 여정을 막 시작했던 제 마음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이 문장은 제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새기는 말입니다. (후략)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중에서 / 김아라 지음 / 유노북스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