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은 '복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최근 심리학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주로 애착과 자존감이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애착 노이로제' '자존감 노이로제'에 빠지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잖아도 대한민국의 가정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그것도 모자라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며 더 많은 것을 주려고 애쓴다. 사실 많은 육아서와 심리도서에서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 특히 늘 아이를 지지해주고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엄마의 모습이란 마치 바비인형의 몸매처럼 비현실적이다. 아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엄마들에게 육아서 속 엄마는 멀게만 느껴진다.
이 책도 그렇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물론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높다고 해서 늘 화를 내지 않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공감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 특히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지친 양육자를 위로하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애착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또 다른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안정적 애착이란 애착손상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해다.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지혜로운 양육자가 제 아무리 애착손상을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해도 아이에게 애착욕구를 좌절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초보 엄마일 수록 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애착손상을 주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애착은 한번 깨지면 붙일 수 없는 유리그릇 같은 것이 아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오히려 더욱더 단단해지는 인간의 몸과 같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가 개발되더라도 인간의 굳은 살을 흉내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소재의 회복력이 좋으면 원형 복구까지는 되겠지만, 인간의 손발처럼 다치고 찢어지는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질 수는 없을 테니까.
애착은 그런 것이다. 한 번도 손상되지 않았기에 애착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깨지면서도 이를 다시 복구하고 연결시키기 때문에 단단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 살짜리 아이가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계속 칭얼거려 “야! 너 정말 안 잘 거야?”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해보자. 깜짝 놀란 아이는 더 울며 보챈다. 엄마는 울지 말라며 더 큰 소리를 낸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엄마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게 아니라 아이의 마음에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ㅇㅇ야, 잘 잤어?” 그런데 어젯밤에 엄마가 소리쳤을 때 마음이 어땠어?“라며 ‘속대화(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이의 내적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마음도 모르고 “소리쳐서 미안해!”라며 섣불리 사과하거나 “엄마도 지쳐서 빨리 쉬고 싶을 때가 있어”라며 화난 이유를 먼저 이해시키려는 대화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물어봐주는 부모다.
뒤늦게라도 아이의 좌절된 욕구와 위로받지 못한 감정을 이해해주는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아이의 애착손상은 충분히 회복된다. 그렇다고 항상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열에 한두 번 정도라 해도 이런 회복 경험은 아이에게 인간관계의 좌절을 영구적 좌절이 아니라 일시적 좌절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애착손상을 회복한 경험이 없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금이 간 관계를 회복시키기 어렵다. 안정적 애착이란 끝없는 ‘단절-회복brake-repair’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동아줄이지, 부모의 초인적 인내와 정성으로 한 번도 금가지 않고 빚어낸 도자기가 아니다. 그러니 제발 천사 같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마라. 일시적인 단절을 받아들이되 다시 연결을 회복시켜주는 부모가 돼라.
애착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유년기의 애착경험만으로 한 아이가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나갈 수는 없다. 어릴 때 아프지 않았다고 커서도 아프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상처받기 쉬운 존재이고, 세상은 시련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부모처럼 우리를 대해주지 않고, 세상은 가정처럼 안전한 곳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는 ‘적절한 애착 손상’이 필요하다.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애착손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애착손상이 심각한 것만큼 문제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애착 욕구의 좌절’은 세상을 헤쳐나갈 독립심을 주고, 자아중심성에서 벗어나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기초가 되고, 대상의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바라보고 통합할 수 있는 시야를 준다. 좌절은 발달의 중요한 요소다.
[관계를 읽는 시간/ 문요한 지음/ 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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