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고 품위 있게 말하는 법
“당신은 안 돼.”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지.”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말을 해줘?”
교묘하고 집중하게 상대를 조종하는 가스라이팅.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가해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런 말로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왜 남편은 끊임없이 부인의 외모를 폄하하는가’라는 주제로 재미있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기혼자라면 꽤 공감하시는 주제일겁니다. 꽤나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보통의 남편들도 부인의 외모를 폄하하는 경우는 많으니까요.
데이비드 버스는 상대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심연의 두려움이 외모 폄하로 이어진다고 밝혔습니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아내는 자녀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게 되지요. 남편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무의식 중에 자신이 버려질 수도 있다는 불안을 갖게 됩니다. 그 불안의 마음이 ‘당신은 밖에 나가봤자 더 이상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는 왜곡된 언어로 표출되는 것이죠.
이 연구를 접한 뒤 친구에게 했던 나의 말과 행동을 냉정하게 되짚어보았습니다. 나 또한 친구가 떠날까 봐 불안한 마음에 그랬던 것일까요? 아마 100퍼센트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친구의 직장은 제가 근무하는 아주대학교 근처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날 수 있었는데 장사를 하게 되면 다른 지역으로 떠날 게 분명했으니까요. 이전처럼 친구들 만날 수 없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너는 장사하면 안 돼’와 같은 왜곡된 말로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라도 가스라이팅을 하는 이유를 알았으니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당하는 쪽에서 먼저 상대의 불안을 잠재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내가 장사를 하더라도 너랑은 예전처럼 자주 만날 거야”라고 안심시켜 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보다 더 좋은 건 내가 먼저 다짐을 받아내는 거겠지요.
“너 바쁘다고 내 연락 피하면 안 된다?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씩은 술 마시러 나와. 아니면 너 대신 다른 사람 남겨놓고 가든지!”
좀 유치하고 오글거리면 어떻습니까. 어린아이였다면 손가락도 걸었겠지요. 하지만 다 큰 어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 과정을 소홀히 한 탓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요즘도 가깝게 지내던 동료나 친구들이 급작스럽게 떠나는 경험을 가곤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어린아이처럼 약속을 청합니다. 원거리 근무를 하러 가는 동료에게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지인에게도, 자주 연락할 테니 멀어지지 말자고 선뜻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별을 어려워할 상대를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서운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엉뚱하게 말썽을 피울지 모르는 나 자신을 위해서지요. 홀로 남겨지거나 버림받고 싶지 않은 욕망은 어른이라고 해서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나이 들면서 가져야 하는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자기 욕망을 솔직하면서도 품위있게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칫 착각을 하곤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원하는 것을 잘 숨겨야 한다고, 드러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을수록 원숙한 인간이라고 말이지요. 말 그대로 착각입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관계를 해치는 온갖 바보 같은 말들은 자신의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 바보 같은 말들을 전문용어로 ‘개소리’라고 합니다. 해리 G.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영양가 없이 무작정 내뱉는 말들이 바로 개소리Bull-shit라고 정의내립니다. 그럴 때 개소리야말로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하지요.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자네는 아직 어려서 잘 몰라.”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당신들 탓이라는 거 인정하지?”
우리가 힘과 권력이 있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한 개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나의 욕구를 솔직하고도 품위 있게 드러내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심리학에서 자주 하는 실험 중에 ‘거래 게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피실험자들을 대상으로 모의 거래를 하도록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내어주고,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비즈니스 계약이나 부동산 월세 계약 등을 시뮬레이션하기도 합니다. 어떤 팀은 양측 모두 만족하는 ‘윈윈win-win’의 결과를 내놓기도 하고, 어떤 팀은 완전히 파국을 맞기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최상위 결과를 내는 팀과 최하위 결과를 내는 팀 모두가 고연령자로 이루어진 그룹이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에서도 좋은 결과나 나쁜 결과가 모두 나오기도 하지만 최선이나 최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삶의 경험은 중요한가 봅니다. 그러면 대체 어떤 어르신들이 완벽한 거래를 성공시키고, 또 거래를 엉망으로 만들었을까요?
그 포인트는 욕구의 표현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밝힐 줄 아는 분들은 거래를 성공시켰고, 원하는 것은 많은데 자신의 욕구를 끝까지 꽁꽁 숨기는 분들은 결국 거래를 망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내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은 상대에게도 이익을 안겨주고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습니다. 욕구를 숨기면 상대도 잃고 나도 잃습니다. 적당히 나이를 먹은 우리가 가스라이팅의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내 욕구에 대해 소위 ‘선빵’을 날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내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연습하려고 합니다. 사실 품위까지 챙기는 것은 아직 조금 어렵습니다. 대신 주책맞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선에서 스스로 조금 내려놓고 우스워지는 것을 택하지요.
회의가 시작될 때면 씨익 웃으며 연구원들에게 선언합니다.
“알지? 이 회의의 주인공은 나야. 너희들 머릿속 생각을 빨아먹어서 총장님께 예쁨을 받고 말겠어!”
다정한 우리 연구원들은 솔직한 지도교수의 ‘선빵에도 기꺼이 큭큭대며 대꾸해줍니다.
“물론입니다. 교수님. 총장님께 귀여움도 뿜뿜 받으셔야죠.”
정말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마음의 지혜/ 김경일 지음/ 포레스트북스]
'세상사는 이야기 >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건강자료실]현재의 자신을 긍정하라 (0) | 2023.07.22 |
---|---|
(마음건강자료실)내 안의 분노와 평화롭게 지내는 법 (0) | 2023.07.03 |
(마음건강자료실)사소한 깨달음 (0) | 2023.06.04 |
(따뜻한 하루)인간관계 속에서 항상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요. (0) | 2023.05.19 |
(마음건강자료실)애착은 '복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0) | 2023.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