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
낡은 시골집에서 작업하는 선배가 있다. 대부분의 젊은 작가처럼 선배 역시 풍족하지 않은 살림인지라, 자기가 원하는 곳에 터를 잡고 새 작업장을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신세 한탄만 할 수는 없는 법. 선배는 직접 발품을 팔았다. 작업할 만한 시골집이 있는지 매일같이 알아보러 다녔고, 몇 달 뒤 동네와 떨어진 곳에 빈집을 찾을 수 있었다.
물어물어 도시에 산다는 주인을 만났다. 그는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이 망가질 테니 잘 고쳐서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선배는 비록 제집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설렘 하나로 낡은 집을 고쳐 나가기 시작했다. 무성한 풀과 쌓인 먼지를 깨끗이 치우고, 쓰러져 가는 쪽에 기둥도 새로 대며 마음 다해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두 계절이 지났다. 낡은 집이 서서히 바뀔 즈음 나는 선배의 작업실을 찾았다. 선배는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두 달 전부터 주인이 자주 온다는 것이었다. 와서 하는 말이, 집을 비워 달라고 할 때 비워 주란다. 그래서 임대료 없이 살라고 했다고.
선배도 자기 집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나가야 하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을 터다.
나는 선배에게 물었다. 돈을 더 들여 수리하기도 그렇고, 가마도 지어야 하는데 불안하지 않으냐고. 그러자 선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언제든 집을 비워 줘야 한다는 말을 듣고 온몸에 기력이 쫙 빠졌어. 설레는 마음이 불안으로 바뀌었지. 그래서 한동안은 작업도 못했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도 했지. 그렇게 보름을 그냥 흘려보냈는데, 다음날 아침 다시 집을 수리하기로 마음 먹었어. 나갈 일 걱정하면서 보낸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운 거야. 내일 나가더라도 오늘은 내 삶이고, 내 집이고, 내 작업실이니까. 내일에 저당 잡힌 오늘이 그렇게도 싫더라고."
그 말을 들으며 어디에서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선배가 큰 산처럼 보였다. 비록 가진 것은 넉넉하지 않지만 마음의 집은 참 튼튼하구나 싶었다.
- 좋은생각/2018.5월 호
'세상사는 이야기 > 건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건강자료실] 화를 내지 않고 아이를 가르치는 법 (0) | 2018.05.13 |
---|---|
[마음건강자료실] 인지적 오류 (0) | 2018.05.03 |
[마음건강자료실] 다른 사람이 자주 거슬린다면? (0) | 2018.04.29 |
[마음건강자료실] 날 괴롭히는 상사를 견뎌내는 방법 (0) | 2018.04.24 |
[마음건강자료실] 혼잣말, 가장 낮은 목소리의 소통 (0) | 2018.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