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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자료실] 위로받고 싶은가요, 변화하고 싶은가요?

딸기라때 2019. 1. 21. 19:36

 

위로받고 싶은가요, 변화하고 싶은가요?

 

"은주씨, 확실히 해둘 게 하나 있어요. 심리상담이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마법의 알약'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심리상담만 받으면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선 심리상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커서 심리상담을 받겠다고 결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까지 큰 결심을 하고 왔으니, 심리상담을 받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은주는 긴장한 탓인지 센터장이 말하는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자신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사실 은주는 수다스러운 편이 아니라서 평소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상대방마저 말수가 적으면 힘들었던 경험이 많아, 심리상담 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은근히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 마법의 알약 정도는 아니더라도 도움은 되겠죠?"

 

"물론이죠. 상담 효과는 사람에 따라, 도움 받기 원하는 주제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지만 변화하려는 마음이 있고, 변화하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다면, 분명 효과가 있답니다."

 

"변화라고요? 상담의 목적은 위로가 아닌가요?"

 

물론 내담자가 상담을 통해 원하는 것이 위로라면 당연히 가능합니다. 정말 고통스럽고 지쳐서 그게 누그든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붙잡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럴 때 가족, 연인,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로해주기보다는 책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보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심리상담가의 위로는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상담자도 따지고 보면 생판 남인데, 그런 사람에게 돈을 내고 받는 위로가 무슨 위로냐고 말이죠."

 

은주는 센터장의 말에 실소를 터뜨립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내고 받는 위로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그런 위로는 전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인들에게 심리상담을 받을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대체로 '심리상담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해서 네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심리상담은 나를 치유해줄 마법의 알약'이며 '심리상담의 역할은 위로가 전부'라는 것이 심리상담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은주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상담이 필요한 사람도 '나는 위로가 필요 없다'면서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략)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 역시 돈을 내고 받는 위로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것을 변화라고 말씀하시니 좀 억울하네요. 힘든 마음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나 환경 때문이거든요. 정작 변화가 필요한 것은 힘들어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이나 환경 아닐까요? 그런데 그들은 변할 생각도 없고 변할 의지도 없는데, 오히려 힘들어하는 당사자가 변해야 한다니 잘못된 것 아닌가요?"

 

(중략)

 

은주의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은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습니다. 알코올중독 같은 심각한 문제를 지닌 남편이 아니라 그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가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고, 폭언으로 딸에게 상처를 입힌 아버지가 아니라 상처 받은 딸이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허다하죠.

 

신체의 건강처럼 마음의 건강에도 역설이 존재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할 사람들은 헬스장에 오지 않는데, 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들은 열심히 와서 매일 운동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심리상담에 관심을 갖고 심리상담을 받으려는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작 심리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은 심리상담센터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초래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나만 왜?'라며 억울한 마음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관계로 맞물려 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먼저 기존 틀을 깨는 변화를 시작하면 상대방도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죄송하긴요.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우세요. 적어도 상담실에서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네. 심리상담을 받게 된다면 그렇게 해볼게요. 그런데 선생님, 마음이 힘든 것도 모자라 변화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가져야 할까요?"

 

"은주씨, 잘잘못을 따져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한다면,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피해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죠. 그러나 생대가 변하지 않고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그들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가 변한다면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답니다."

 

은주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어떻게든 울음을 참으려고 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센터장은 은주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말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은주를 바라봅니다. 은주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슬픔인지, 억울함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궁금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눈물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옵니다.

 

"그래도 변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은주의 심정도 이해갑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변화를 거부할 순 없습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 변하게 마련이니까요. 매일 보는 가족의 외모도 실은 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어른들은 매일 조금씩 늙어가죠. 너무 미세한 변화라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든 변화하고 있죠.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변화의 유무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쪽으로 변할지, 아니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변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심리상담은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입니다. 보다 나은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변화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연습과 시행착오도 잘 겪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심리상담가의 역할입니다.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글. 강현식/ 그림. 서늘한 여름밤/ 와이즈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