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반세기의 삶을 통해 얻은 신념과도 같은 인생철학이 있다.
이러한 신념은 내 딸 성아와의 대화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고,
그 아이의 성격과 태도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
다. 그리고 요즈음 성아와의 대화 속에서 이러한 나의 철학에 물들
어 있는 딸을 발견하는 희열을 느끼곤 한다. 그 희열을 이번 캠프에
참여한 나의 또 다른 분신들에게 주고 싶다.
첫째, 인간이 태어나는 데는 아무런 선택이 없다.
여자로 남자로, 부잣집에서 가난한 집에서, 권력이 있는 집에서 권력이 없는 집에서 등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또한 백인으로 흑인으로 혹은 동양인으로 태어나고자 해서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어디서 태어나는가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닌 건만 이 사회는 인간이 태어난 배경이 마치 그들의 공이나 죄인 양 서슴없이 차별을 가한다.
나는 감히 이러한 제도가 턱없이 부당하도고 선언한다. 태어난 배경에 의해서 그 사람의 활동 범위를 정해버리면,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기회를 잃고 만다. 그것은 그 사람만의 손실이 아니다.
세계의 위대한 영웅들과 발명가들이 태어난 배경에 의해 한정된 기회를 부여받았더라면 인류 역사에서 오늘과 같은 발전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차별은 차별을 행사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큰 손실이 된다.
둘째,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에도 아무런 선택이 없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죽는다. 권력을 가진 자도, 돈이 많은 자도 결코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죽음이 두려워서 항상 겁에 질려 살거나, 올 때 오더라도 겁내지 않고 태연히 알찬 삶을 살거나 죽을 때가 되면 다 죽게 마련이다. 어차피 맞이해야 할 죽음이라면, 이것 역시 자연의 법칙이란 믿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몸은 죽으면 어차피 썩어서 없어질 자연의 일부다. 아무리 아끼고 귀하게 여겨도 죽은 다음에는 다른 사람의 뜻에 의해 처리된다. 이왕에 내 것이 안 될 봐 에야 차라리 인류를 우해 값진 보탬이 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일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1991년 3월 2일 날 써둔 편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성아는 이 편지를 본적이 없다. 언젠가 내가 이러한 뜻을 얘기해 두려 했지만 성아가 듣기를 거부했다. 남에게는 아주 강해 보이는 아이도 엄마의 죽음을 덤덤하게 들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 이상의 사이이고 보면 듣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딸 성아에게
지금 이 편지를 써두고자 함은 내가 심신의 불능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없게 되어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 대비해서다.
만약 내가 회복 불가능한 식물인간처럼 되어 더 이상 혼자서 살아갈 수도 또는 정신의 마비 등으로 의사에게 내 생명을 임의로 연장하고 있는 보조선을 끊어달라는 뜻을 전할 수도 없게 될 경우,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의 내 존재를 끝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며, 네게 그러 수 있는 결정권을 맡긴다.
이런 부탁에 네가 얼마나 가슴아파할지 엄마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단다. 그런데도 하지 않을 수없는 내가 원망스럽구나.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의 경우 내 삶을 끝내주는 것이 바로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함이 나를 더 많은 고통으로부터 구해주는 일이고, 나를 더욱 해복하게 하는 길이
기에…….
만일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혹은 과학 연구를 위해 내 몸의 일부 또는 전체가 필요하다면, 그런 고귀한 뜻을 위해 무엇이든 기꺼이 주기 바란다. 그리고 나머지 필요 없는 부분들을 태워서 너에게 가장 편리한 곳에 묻어주기 바란다.
언제나 성아를 사랑하는 엄마가.
셋째, 인간에게는 이승에서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혹자는 우리에게 전생이 있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우리는 죽은 후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전생에 무엇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후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금 삶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 보면 전생과 후생은 다른 사람의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생과 이승 그리고 후생이 본인의 뜻대로 서로 연결되지 못하니, 결국 인간에게는 이승에서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겠다.
넷째, 그러나 이 한번 의 기회를 어떻게 살다 가는가는 바로 내가 결정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축을 때까지 사회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처지에 닥치더라도 마지막 선택은 자신이 한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며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든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며 어쩌지 못해 살든가 마지막 선택은 각자의 손에 주어져 있다.
나는 물 반잔의 비유를 자주 든다. 물이 반 남은 것을 보고 " 아, 이제는 반밖에 안 남았구나! 어떡하지?" 하며 안절부절 못하거나 "아, 아직도 반잔은 남았으니 난 얼마나 행운아인가!" ㅎ며 다행스럽게 생각하거나 물이 반잔이라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서 같은 현실도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이 행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바로 자신이 하는 것이다.
다섯째, 이왕 태어난 삶이다. 한번 힘차고 보람 있게 살다감도 멋있지 않은가.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는 이미 태어났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깨닫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마는 사람들도 부지시구다. 그들은 자기 소신껏 살아볼 기회마저도 뺴앗겨버린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알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죽음이 그들을 데리고 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삶을 요리해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살이에 질질 끌려 다니며 죽지 못해 살거나, 아니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원하는 삶을 개척하며 힘차게 살거나 마지막 숨이 거두어질 때까지 우리는 '살아 있다'
이왕이면 이승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내 뜻대로 멋있게 살다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것도 매력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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