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치를 낮추니 이윽고 보이는 것들
담백함은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을 때 느끼는 기분’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언젠가 완벽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며 나를 찾아온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상담 과정에서도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거기에 인간관계에서 약간의 상처만 받아도 곧바로 공황 장애를 일으켜,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늘 자기를 돌보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으로 만나는 관계에서는 상처를 덜 받는데, 가까워지기만 하면 꼭 상처를 받는다는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에게 “가까운 사이란 어떤 사이를 의미하나요?”라고 질문했더니, 곧바로 “날 이해해주고 감싸주는 관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가까운 사이라면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을 나 역시도 똑같이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는 없다. 상대방이 내게 주는 만큼 나도 상대방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언제부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더 익숙해진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가 바라는 것을 주지 않으면 혼자 실망하고 상처받는다. 가까운 사이라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이해하고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도리어 화를 내기도 한다.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욕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현실인지를 이해하고, 그 현실에 맞는 적절한 기대치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실제로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사람일수록 관계 속에서 바라는 것이 많다. 즉, 기대치가 높다는 뜻이다. 언제나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하고, 내가 모임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나를 최고로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느끼는, 환상에 가까운 기대치를 들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 마음이 일으키는 병폐도 크다.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내려면 거기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돈도 커지기 때문이다.
(중략)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가면서 관계를 맺는 일도 위험하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너무 잘해주는 상대를 만만하게 보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심리가 갖는 ‘지배 성향’에서 비롯된다. 누군가 과거의 노예제도가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고 해서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노예로 부리듯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갑질’이다 뭐다 해서 그런 행태를 실제로 목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관계를 맺는 데는 상대방이 나를 만만하게 볼 정도로 ‘올인’할 필요는 없다. 흔히 하는 말로 ‘내가 있고 나서 세상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올인한다고 해도 그것을 올인으로 받아들이거나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의 일부만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데, 상대는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주고 감싸주지 않는다고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결혼 생활에서도 첫사랑 커플들이 더 많이 갈등한다. 내 인생 전부를 네게 걸었는데, 난 다른 사람 만난 적도 없는데, 네가 뭐든 다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싸우곤 한다.
상담을 하다보면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아니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이 결국은 ‘기대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세상에 내 기대치를 온전히 만족시켜줄 사람은 없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드라마 시청률도 40퍼센트만 나오면 ‘대박’이라고 한다. 때로는 51퍼센트의 지지율만 얻어도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우리가 무슨 수로 인간관계에서 100퍼센터의 만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자책하는 이유도 자신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지나친 기대치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그 덫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그것이 끊임없는 자기비하와 원망으로 이어지면, 결국 인생 자체가 불행해진다.
우리가 기대치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방법밖에 없다. 흔히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막상 무엇이 마음을 비우는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는 것이 곧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즉 현실적인 기대치를 갖는다는 것과 마음을 비운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비울 때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진솔함이나 담백함의 가치에 눈을 돌릴 수 있다.
출처 : 양창순/ 담백하게 산다는 것/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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