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치지 않을 때까지
예전에 한 북카페에서 여러 독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분이 가족에게 이기적인 자신이 싫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결혼한 언니가 아이를 낳았는데,
조카가 예쁘기도 하고 언니도 고생하는 것 같아
선물도 많이 하고, 자기 시간을 들여 육아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자신의 일상이 사라지고 힘에 부쳐서,
언니에게 잘 가지 않게 되었고
그런 자신이 이기적으로 느껴져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들
‘그게 왜 이기적이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고,
고통을 조금씩 나누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해도 건강한 경계는 필요하다.
타인과의 경계를 세우지 못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도 흐려지게 되는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까지 하려 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누군가 물에 빠졌다면 마땅히 도움을 줘야 하지만,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오히려 상황만 악화되는 것처럼
문제 상황에서 함께 허우적거리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제대로 돕기 위해서
건강한 경계를 세우며 나를 지키는 일이 필요하고,
자신의 몫과 상대의 몫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경계를 긋는 건 이기적인 게 아니다.
최소한의 경계도 없는 관계는 되레 분노와 원망, 자기 연민을 만들고,
과잉된 책임감이 상대를 의존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나를 돌볼 수 있을 때 타인의 삶도 도울 수 있는데
실제로 연구에서는 자신의 에너지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
타인과 세상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타인을 위해서도 나를 돌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혼자 모든 책임을 지려 하지 말자.
자신이 들일 수 있는 에너지와 자원을
관계의 밀도, 상황에 따라 일인분의 책임감으로 배분해야 하고,
상대 역시 힘이 든다면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대상을 늘려야 한다.
다른 이를 돌볼 책임은 느끼면서도
나 자신을 돌보는 것에는 인색해진다면
그건 자신에 대한 무책임일 뿐,
내가 지치지 않아야 나를 지킬 수 있고,
그래야 나도, 관계도 건강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싶다면
첫 번째 조건은,
당신의 삶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김수현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놀(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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