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바운더리를 지켜주세요
D는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매의 눈으로 살피는 사람이다. 섬세하고 관찰력도 뛰어나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잘 기억하고 챙겨주어 따뜻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그는 늘 살짝 지쳐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지나쳐 정작 자기 자신을 잘 챙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현미경으로 바라보다가 오히려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D를 보면 가끔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그와 내가 가까워진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말, 행동, 표정에 일일이 반응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 왜 나쁘겠는가? 그러나 모든 것이 과하면 문제가 생기듯,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너무 과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남을 생각하는 마음인지 한 번쯤 의심해보아야 한다. 정말 상대에게 애정이나 관심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은 본인을 위한 것은 아닐까? 상대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에 일일이 반응하는 이유가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눈치 보는 마음, 착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 칭찬받고 싶은 마음,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면 그것은 실패한 전략이다.
우선 내가 상대에게 보내는 마음은 결코 동일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설사 똑같이 돌아온다고 해도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항상 본인이 실제보다 더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결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아니다. 나 혼자 그를 지켜보고 나 혼자 판단하다 보면 결국 예민해지고 짝사랑하는 꼴이 된다. 결국에는 꼬투리나 시비를 걸 만한 구석들만 남는다. 상대를 지나치게 관찰하면 관계에 필히 악영향을 미친다.
만약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말, 행동, 표정에 일일이 신경 쓰고 반응하고 있다면 이제 조금 무관심해져야 한다. 그냥 지나쳐야 한다. 슬쩍 듣지 못한 척해도 된다. 흘려들어도 된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건성으로 들어도 된다. 타인의 생각, 감정, 말, 행동은 그 사람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에 내가 의미를 붙이고 깊이 생각해도 관계에 별 도움이 안된다.
사람은 자기만의 바운더리를 원한다. 침해당하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선이 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는 척 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르는 척 넘어가거나 물어보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상대에게 관심이 과한 사람은 상대방의 비밀이나 은밀한 부분까지 굳이 파헤치고 선을 넘는다. 그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인 줄 착각한다. 누군가가 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누구에게나 그런 시선은 부담스럽다. 그러므로 남이 나를 필요로 하거나 도움을 청할 때를 제외하고는, 남을 낱낱이 살피는 것은 좋지 않다.
김유진/ 매일하면 좋은 생각/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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