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의 기술
걸핏하면 외박하는 남편 때문에 화가 난 아내가 묻는다. "이혼해야 할까요? 그냥 참고 살아야 할까요?" 상사의 폭언에 시달리던 직장인이 흥분해서 묻는다. "당장 사표를 내야겠죠?" 짝사랑에 빠진 젊은이가 머뭇거리며 "고백해야 할까요? 그랬다가 차이면 어쩌죠?"라고 물어온다. 가끔은 이런 질문도 받는다. "지금 아파트를 팔았다가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죠?" 나는 사랑의 전문가도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다. 내가 내담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 문제의 전문가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고민을 갖고 온 바로 그 사람이다. 즉문즉답으로 답을 척척 내놓는 멘토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한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정신과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랑, 일, 돈처럼 중요한 주제에 대해 결정 내려야 할 때는 "지금 나의 감정은 어떤 상태인가?"를 반드시 먼저 살펴야 한다. 결정은 감정에 편향된다. 고조된 감정은 판단을 왜곡한다. 불안하면 관점이 좁아지고 다양한 대안을 고려하지 못하게 된다. 분노하면 믿고 싶은 것만 골라 믿는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기분이 들뜨면 잠재적 위험을 간과하게 된다. 우울이라는 감정에는 자기 파괴적인 결과에 이를 게 분명한 선택을 끌어당기는 속성이 있다. 인생에도 되돌리기 버튼이 있다면 나중에 누르고 싶어질지 모른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라면 안정될 때까지 의사결정을 마뤄두는 게 낫다. 흥분해서 찾아온 내담자에게는 고민거리를 하룻밤 푹 자고 난 뒤에 다시 생각해보라고 한다.
흥분을 가라앉히기에 하루로는 부족할 수 있다. 감정이 평온해지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면 어떻게 할까? 상상력을 활용하면 된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한 뒤에 일어날 변화를 긴 시점으로 늘여서 보는 것이다. 나는 1-1-1 기법을 추천한다. 의사결정을 하고 나서 하루 뒤, 한 달 뒤, 그리고 일 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리 상상해보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어떤 마음일지 한 달 뒤에 후회하지는 않을지 1년 후에 삶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마음으로 그려본다. 마지막에 0 하나를 덧붙여서 10년 이후의 자기 모습도 떠올려보면 좋다. 옳은 선택은 시간의 압력을 이겨낸다.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또 다른 방법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문제를 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떠올려본다. 그 사람이라면 자기 앞에 주어진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라고 조언할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한 요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기 문제에 파고들 때는 수많은 변수를 한꺼번에 다 고려하려 들고 그래서 머리만 복잡해지고 판단 오류를 일으키곤 한다.
친구가 사랑에 빠졌는데 표현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충고한다. "당장 고백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지만 혼자 고민하다 보면 '거절당하면 어쩌지, 창피하지 않을까, 마음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질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심을 못 한다. 이런 경우 자기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게 정답이다. 서로의 마음이 맞아 연인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거절당할 수 있지만 차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1년 뒤에는 희미해지고 10년 후에는 가물가물한 추억으로 수렴되므로 주저할 필요 없다.
김병수/ 겸손한 공감/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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