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장석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 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누군가에게 심각하게 고통스럽고 충격을 주는 사건 또는 경험에 관한 심리적 반응이라는 뜻의 ‘트라우마’는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트라우마’는 죽음, 심각한 부상, 성폭력, 가정 폭력 등의 직접적인 외상 사건을 직접 경험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경험에 간접적인 노출 또는 이러한 사건을 간접적으로 반복해서 경험할 경우에도 해당된다.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반드시 한 번 이상은 의미 있는 관계에서의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고,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과적 질병을 진단받을 확률은 약 5%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는 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회복할 수 있는 내적 힘이 있다는 의미이다. Tedeschi와 Calhoun은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매우 도전적인 상황에 투쟁한 결과 얻게 되는 긍정적 심리적 변화”를 외상후 성장이라는 용어로 소개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단순히 역경 이전의 기능 수준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던 이전의 적응 수준, 심리적 기능 수준, 또는 삶의 자각 수준을 넘어서는 진정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대추 한 알이 영글어지는 데에도 수많은 시련을 겪는데, 하물며 인간의 삶은 오죽할까? ‘왜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반추적 사고에 빠지면 우리는 과거의 상처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고통과 시련을 통해 타인을 깊이 이해하고 실존적 물음을 던져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우리의 심리적 유연성은 향상되고 삶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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