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이해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모욕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가 “이해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모욕이다”라고 말한 진의는 “아예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라기보다는 “함부로 이해했다고 속단하지 말고, 더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심리상담이 됐던 일상의 대화가 됐던,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는 과정은 단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세상을 어떻게 몇 마디 말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참된 이해는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해는 판단이 아니라 상호 소통의 과정이다. 경외심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너의 세상에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묻고 답하고, 다시 묻고 답하며 천천히 너를 알아가는 함께 걸어가는 여행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함께 놀라고, 때로는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며, 또 어떤 때는 함께 기뻐하며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존재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다. 이해는 상대방의 행동이 맞다, 틀렸다, 잘했다, 못했다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의 세상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며 이끌림이다. 어린 시절 옆집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것과 같다. 그것은 머리로 하기보다는 가슴으로 하는 것에 더 가깝다.
이해는 나와는 다른 존재인 너에 대해 알고 싶고, 다가가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다. 너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사랑하고 싶음이다. 우리 사이에 놓인 장애를 걷어내고 한마음이 돼 함께 손잡고 노래하며 춤추고 싶음이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존중하고 허용해 주고, 견뎌주고 기다려주고 싶음이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이해와 수용은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다. 오히려 “저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00씨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선생님은 00씨가 이해되세요?”라며 제삼자에게 특정인에 대한 자신의 거부감을 지지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의 이해란 상대방의 행동이 용납될 수 있다, 혹은 없다는 측면에서의 도덕적 판단을 의미한다. 이때 그런 판단을 누가 어떤 기준에서 하는지가 중요한데,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판단하는 그 사람이 자기 기준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라면 이해란 너무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행동이며, 자칫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이쯤 되면 니체가 “이해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모욕이다”라고 한 말의 의미가 더욱 명료해진다.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해받는 일조차도 이해를 해주는 사람의 주관적 가치판단에 구속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불쾌하고 모욕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아예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그들에게는 이해받는 것이 하나의 모욕이 된다고 했다. 니체의 경고는 이해를 판단과 평가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절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진정한 이해는 맞다, 틀리다, 좋다, 나쁘다라는 평가나 판단이 아니며, 더구나 주관적 기준에 의해 상대방을 자의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해는 다른 사람의 세상에 대한 관심와 애정에서 출발해 그 사람의 세상을 그 사람의 배경에서, 그 사람의 눈으로 보고 경험하며 그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만나려는 무한한 열정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이며 사랑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렇게 이해받고 싶은 꿈이 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신성함과 온전성을 믿기에 가능하다.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김정규 지음/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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