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건강

(마음건강자료실)무례함과 예민함을 구분하자

딸기라때 2024. 12. 7. 09:29

무례함과 예민함을 구분하자


예민한 내가 문제인가
    누군가와 기분 나쁜 상황이 발생했다고 치자. 그 상황에서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해서 벌어진 일인가?’라고 생각하게 될 경우, 고통은 오롯이 내 몫이 된다. 왜냐하면 상대나 상황이 제공한 원인은 없고 오로지 나에게만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상황에서 한 사람이 100% 원인 제공자일 경우는 드물다. 관계는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다는 것이다. 특히 관계에서 늘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쭈그리로 만드는 게 버릇이 된다면 나는 정말 ‘예민해서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을 느끼며 나날이 자기를 혐오하는 성격이 패턴으로 굳어진다. 하영 씨의 경우도 이와 같았다.

    “요즘 제가 너무 심각하게 예민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도 제가 예민한 거겠지만…. 사람들이 저를 공격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아졌어요. 모두가 저를 탐탁지 않게 보는 것 같고요. 그렇게 저를 보는 사람들이 다 미워지고 짜증 나요. 사람들이랑 있으면 원래도 좀 많이 지치긴 했는데 요즘은 더 빨리 집에 오고 싶어져요. 그런데 집에 와서 뭘 해도 재미가 별로 없어요. 원래는 재밌었던 일도, 연애도 다 하기 싫어요. 이런 제가 너무 싫어요. 또 제가 너무 예민한 거겠죠?”

    나는 하영 씨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하영 씨가 느꼈던 것처럼, 본인이 예민할 수도 있고, 실제로 사람들이 하영 씨에게 무례했을 수도 있다고. 가장 높은 확률은 하영 씨도 예민하고 상대도 하영 씨에게 무례했을 경우라고. 그러니 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찬찬히 같이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하영 씨가 느낀 예민함이, 누군가가 하영 씨에게 던진 무례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하영 씨가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그녀가 겪은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파악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무례한 거다

    예민한 사람들의 천적은 무례한 사람들이다. 타인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무례한 사람들은 도대체 왜 남에게 상처를 주고도 모르는 것일까? 아니,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닐까. 그들은 상처받는 사람의 입장엔 관심이 없는 걸까?

    그들이 무례하게 구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짊어질 몫은 아니다. 무례함을 제공한 사람 또한 마땅한 몫을 짊어져야 한다. 무례한 사람들은(적어도 그들이 무례하다고 느끼는 상대방에게만큼은) 예의 없이 행동하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말과 행동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격당했다고 느낄 만큼 세다.

    영어에서도 무례함(rude)이라는 표현은 대개 성적이거나 신체에 대한 언급으로 상대방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언행을 뜻한다. 성이 금기시되는 편인 우리나라의 경우, 성적 발언으로 인한 무례함은 친구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일은 아닐 수 있으나,  신체에 대한 언급(대개 비하 발언)은 친구, 그리고 가족 사이에 빈번하게 일어난다.

    나조차도 한창 외모에 민감할 10대 시절에 무례한 발언들을 많이 들어 왔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좀 튼실하네?’, ‘너 얼굴 표정이 왜 이렇게 궁상맞아?’, ‘너 걸음걸이가 팔자라서 보기 흉해.’, ‘넌 스커트는 안 어울려. 바지만 입어’ 등의 말들은 나의 신체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결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이런 무례한 말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해소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성인이 되어서도 신체(혹은 외모)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게 되며, 남몰래 정서적 고통을 겪으며 잠 못 이루기도 한다.

    내가 불편한 건 불편한 것이다. 내가 불편한 건 제쳐두고, ‘내가 남보다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자책하지 말자. 예민함의 차이는 타인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비교해서 얻는 것도 없다. 그렇게 나의 예민함을 나 스스로 평가하는 동안 나의 불편감은 내 안에 쌓이며 무의식중에 나를 무례하게 대한 상대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 수도 있다.

    수년간 고통받은 자신에게 통쾌하게 한 방 날릴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동안 자신의 무례함을 내 기분에 상관없이 나에게 투척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다고 티 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참는 것보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관계에도 이롭다. 적어도 솔직함은 확보된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갈등 관리에 필수다. 누가 나에게 반복적으로 지적질을 해왔다면 나도 똑같이 해보자. 나도 그 사람이 나에게 한 그대로. 그리고 그 사람에게 물어보자.

    “네 기분은 어때?”

    그 사람은 괜찮을 수 있다. 나만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관계에서 그 사람의 말투로 인해 기분 나빴던 지점을 수면 위로 꺼내놓는 대화 자체가 의미 있다.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예민했던 내가 예민하지 않은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예민하지만,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누군가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 사람의 무례함을 나의 예민함으로 해석하고 넘어간다면 그 사람에게 난 만만한 사람이 될 뿐이다. 무의식중에 ‘당신은 나에게 무례해도 된다’고 허용하는 것이다.

    예민해서 더 상처받았을 당신의 삶이 앞으로는 조금 덜 무거워지길 바란다. 예민하게 태어난 것도 버거운데 주변에서 날아오는 각종 폭탄을 맞아내느라 고생 많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따스한 눈빛이나 섬세한 배려까진 아니더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 최소한의 예의는 상식적으로 지키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길 기원한다. 최소한의 매너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무례함으로 인한 상처는 나의 예민함 탓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 삶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이다.

나를 아프게 한 건 항상 나였다 / 이혜진 / 스몰빅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