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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시기. 질투. 경쟁심II

딸기라때 2013. 12. 31. 13:29

시기. 질투. 경쟁심 II

 

흔히 시기심은 경쟁관계를 유발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 중에 누가 더 나은가, 누가 더 인정을 받고 이해를 받는가, 누구의 의견이 더 진지하게 받아 들여지는가 등을 놓고 경쟁이 붙습니다. 이 경우, 경쟁을 대하는 태도에는 남녀의 차이가 있습니다. 남자들은 자기를 남과 구별함으로써 자아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따라서 남자들에게는 경쟁관계가 정체성을 확립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동성 관계가 아닌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내아이는 엄마에게서 자기를 떼어내 차별화함으로써, 즉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 됨으로써 비로소 사내아이가 되고, 훗날 자기를 아빠와 동일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 여자들은 자기를 동성과 관련시키고 그들과 같아짐으로써 자아를 찾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경쟁한다거나 남과 다르다는 것은 불안 요소,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선을 긋거나 차별화하는 등의 행위와 관련된 것이 경쟁인데, 이런 태도는 여자들보다는 대개 남자들에게 가까운 것이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경쟁이라는 태도가 사회화 요소의 영향을 부척 많이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세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여자들이 직장에서 같은 여자들끼리만이 아니라 남자하고도 경쟁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들은 역할표에 이미 이 항목이 들어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경쟁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은 경쟁할 때 대개 이를 숨기든가, 아니면 기껏해야 조금 드러내는 정도입니다. 특히 자기의 업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독려되는 공동 경쟁 같은 것은 여자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것일 때가 많습니다. 혹시 아닌 경우가 있다면, 파괴적인 형태의 경쟁, 즉 남을 모조리 배재한 후 유일한 승리자로 혼자 목표지점을 돌파하는, 남자와 여자 전체를 상대로 한 경쟁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 경우는 상대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형태의 경쟁은 관계를 맺는 대신에 벌려놓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경쟁이라는 것이 늘 이런 파괴적인 의미로 통용됩니다. 공동의 목적을 위한 협동이나 지지, 서로간의 격려 같은 것은 대개 어느 개인의 이익 추구라는 제단에 희생되고 맙니다. 이러한 경쟁에서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다른 경쟁자로 인해 바로 나의 힘과 영향력이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은 비단 시기와 경쟁심만이 아닙니다. 질투 역시 내면의 평화를 깨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질투심은 고민 거리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정열이다.”고 한 철학자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독일 신학자)의 말은 오늘 날에도 변함없이 일리가 있습니다. ‘찾는다’라는 말에는 ‘자기에게 고통을 가져올 것’을 처음부터 목표로 삼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적극적 동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투심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어떤 것, 남이 나에게 끼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태도에 대한 개인의 선택적 반응입니다. 인용한 슐라이어마허의 말 속에는, 스스로 고통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떠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다시 말해 고통 말고 다른 것을 찾아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함께 숨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