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싶나요?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마음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한 아이가 대학 입학시험을 보았다. 발표 날, 어머니는 아들이 지원한 대학 게시판 앞에 섰다. 당시에는 합격자 발표를 게시판에 하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들의 이름이 없었다.
‘우리 아들 떨어졌구나.’ 어머니는 주저앉고 말았다. ‘불쌍한 우리 아들을 어찌할꼬?’ 마음은 천근같이 무겁고 몸을 일으킬 기운도 없었다. 겨우 화단 옆 바위에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그 때 저쪽에서 아들이 달려왔다.
“엄마 뭐하세요?” “얘야, 괜찮아. 기회가 또 있을 거야.” 어머니는 아들을 위로했다.
“엄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나 붙었어요.”
알고 보니 어머니는 경상대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아들은 법대였다. 합격사실을 안 순간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행복감으로 가슴이 벅찼다. “우리 아들 합격했어요!”라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불과 수초 전만 해도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극적인 변화였다.
행복감을 느낄 때 몸속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뇌의 변연계는 흥분하고 심장은 빨리 뛴다.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쾌감이 증가한다. 이 모든 일이 몇 초 만에 일어난다. 아들의 합격 소식이 신체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정신 에너지가 돌아온 덕분이다.
정신 에너지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정신 에너지가 고갈되면 휘발유 떨어진 자동차처럼 탈진 상태가 된다. 정신 에너지 충전을 위해선 잠을 잘 자야 한다. 수면 중에 에너지가 충전되기 때문이다.
깊은 잠을 ‘서파 수면’이라 한다. 서파 수면 중에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이 정신 에너지를 만든다. 우울증은 깊은 잠을 빼앗아 가 버려 증상이 악화된다. 때문에 나는 우울증을 치료할 때 우선 환자들을 재웠다. 환자들은 잘 자고 나면 힘을 냈다. 치료도 순조로웠다.
그럼 잠을 잘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침실이 어두워야 한다. 인간은 야행성 동물과 달리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잔다. 뇌가 낮과 밤을 구별하는 단서는 빛이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침실이 어두워야 밤인 줄 알고 잠에 빠져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실의 불을 모두 끄고 방 안의 조명을 점검해보라.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 수도, 다른 빛으로 침실이 밝을 수도 있다. 커튼을 치든지 눈가리개라도 해서 빛을 차단하면 확실히 깊이 잠든다. 낮잠 잘 때 실험적으로 눈가리개를 해 보면 수면의 질적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낮에 20~30분 햇빛을 쬐면 밤에 멜라토닌 분비가 잘돼 수면의 질이 좋아진다. 멜라토닌은 잠잘 때 필요한 뇌호르몬으로, 밤에 분비돼 ‘밤의 호르몬’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햇빛을 보지 못해 뇌가 낮을 밤으로 알고 멜라토닌을 분비해 버린다. 따라서 밤에 쓸 호르몬이 부족해진다. 수면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낮에 햇빛을 쬐는 것이다. 점심식사 후 잠깐 산책하는 것이 수면에 도움이 된다.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수면은 24시간 주기로 리듬을 탄다. 초저녁잠이 많은 사람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 시간을 놓치면 잠이 안 올 수도 있다. 수면 리듬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밤에 잘 자려면 낮에 활동하라. 잠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약간 피곤할 정도로 낮에 몸을 움직여 줘야 잠이 잘 온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 피해야 할 것이 있다. 카페인 음료 즉, 커피, 홍차, 콜라다. 카페인이 뇌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술도 수면을 방해한다. 술을 마시면 잠으로 들어가기가 쉽다. 그러나 술은 수면 리듬을 깨 수면의 질을 떨어트린다. 술 마시면 푹 잔 것 같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음식은 우유다. 치즈나 바나나도 좋다. 이런 음식에는 트립토판이 많다. 이 물질은 수면에 필요한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원료가 된다.
마음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잠잘 때 에너지가 공급된다. 그래서 우리는 잠 욕심을 낼 필요가 있다.
이무석, 정신분석가, 좋은생각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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