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사이에
필요한
마음의 거리
모든 여자는 자신의 산을, 모든 남자는 자신의 바다를 품고 있지.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에서 서로 맞닿을 수 없지만
절대 하나가 될 수 없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나눌 수 없지.
_아지즈 네신, 『툴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인 영역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부모 자식 간이나 연인, 부부 사이처럼 신체 접촉이 허용되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45센티미터 미만의 밀접한 거리, 친구나 직장 동료처럼 가까운 지인의 경우에는 45~120센티미터에 해당하는 개인적 거리, 인터뷰나 공식적인 만남 같은 상황에서는 120~370센티미터에 해당하는 사회적 거리, 무대 위의 공연자와 관객 사이에는 370센티미터를 초과하는 공적인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가 각각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다가가면 상대는 불편함과 갑갑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게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이런 관점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구해 준다. 상대가 섭섭하게 생각할까 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도 친한 척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 하고만 가깝게 지내도 되는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장 필요하고 또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친밀한 관계다.
사람들에겐 사랑하는 사람들끼린 잠시도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부부나 연인, 부모 자식 사이에도 때로는 남처럼 120센티미터 이상 떨어져 서로를 지켜봐야 할 때가 있다. …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실망과 좌절은 한 사람은 너무 가까이 있으려고 하고 한 사람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만약 우리가 상대방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내고 싶다면,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고 너무 멀리 가지도 않는 이상적인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대는 언제나 상대의 두려움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려고 하는 사람은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당신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부담스럽다.” 이 말은 상대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의 자율성을 인정해 준다면 좀 더 편해질 것 같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네 행동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책임 전가는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가까이 있으려고 하거나 또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먼저 상대방과 가까이 있고 싶은 기대를 가졌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방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당신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할까 봐 겁을 먹는다. 반대로 당신이 자유롭게 혼자 있고 싶다는 기대를 가졌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방은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결국 누군가와 가까이 있고 싶은 기대는 자동적으로 의존에 대한 두려움을 낳고, 자율적이고 싶다는 기대는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낳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가까이 있으려고 애쓰는 사람과 거리를 두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티격태격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과 지나치게 의존적인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줄다리기는 끊임없이 상대방의 욕구를 실망시키며 상처를 낼 수 밖에 없다.
상대의 두려움 속에 들어가 보라
상대방의 욕구를 좌절시키며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줄다리기를 멈추고 싶다면 표면적인 갈등을 내면의 갈등으로 바꿔볼 필요가 있다. 상대의 마음속에 싹튼 두려움을 의식해 보는 것이다. 내가 거리를 두려고 할 때 상대가 느끼게 될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의식하고, 내가 가까이 있고 싶어 할 때 상대가 느끼게 될 의존에 대한 두려움을 의식하면서 각자의 입장이 되어 보라. 그리고 상대가 두려움을 줄일 수 있도록 자신의 말과 행동을 변화시켜 보라. 어쩌면 그 변화는 사소한 행동, 짧은 말 한마디로 가능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독립적인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지금 나에겐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요.” 상대방은 갑자기 거리를 두려고 하는 당신이 섭섭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상처는 받지 않을 것이다.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자신의 두려움도 이해받고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사춘기 시절 부모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해 엄청난 투쟁을 벌여 왔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로 모든 걸 함께 공유해야 하는 유아기로 돌아가야 한다면 누구든 답답하지 않겠는가. 남녀를 떠나서 자율성을 갖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똑같은 걸 느끼고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사람을 내 옆에 두고 마음대로 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베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ㅣ 두행숙 옮김
그림 『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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