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버티는 것이 답이다.
때론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든 날들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나던 2월 10일, 바로 위의 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대학교 예비 소집에 간다고 밝게 웃으며 집은 나선 언니가 대학교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죽은 것이다. 연년생으로 친구보다 더 가깝게 지내던 소울메이트 언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내 곁을 떠났다. 언니가 떠난 뒤 한 달 만에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그런데 나는 맘껏 울 수가 없었다. 새벽에 물 마시려고 나왔다가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 슬쩍 방문을 열어보면 아버지가 울고 있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로하고 있었다. 다음 날은 어머니가 울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로했다. 늘 강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와 언니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던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보고 있으면 자꾸 언니 생각이 난다며 끝내 강원도 공장으로 내려가 버리셨다. 집에서 언니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와 큰언니, 남동생, 여동생 모두 언니 이야기를 꺼내면 너무 마음이 아플까 모두 자기 가슴속에만 언니를 묻어 두었다. 집안 분위기가 늘 침울했던 그때, 나에게는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버텨야 해. 나까지 무너지면 안 돼.’
나는 언니를 대신해 두 사람 몫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는 이유의 전부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공부한답시고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내 연습장은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다짐으로 채워지곤 했었다. 왜냐하면 나 때문에 언니가 죽었으니까. 역사학자가 되겠다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언니가 선택한 대학교의 예비 소집일에 그 일이 터져버렸으니까. 언니가 갈까 말까 고민했던 다른 대학교를 선택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무너지면 안 되었다. 울어서도 안 되는 거였다. 나마저 무너지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슬픔이 얼마나 더 크겠는가.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모님 걱정 끼치는 일 없게 한 번에 대학에 붙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혼자 언니의 죽음을 견뎌 내며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이겨야 한다며 의자에다 끈으로 내 몸을 묶어 놓고 공부를 하다가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면 가위에 눌려 벌떡 일어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버티는 데도 한계치에 이르렀는지 대학 시험을 한 달 앞두고부터 탈이 나기 시작했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몸은 고된데 잠은 잘 안 오고, 계속 체해서 먹을 때마다 토를 했다. 나중에는 이러다 시험을 제대로 볼 수는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결국 시험 당일 마지막 교시에 과학 시험을 보는데 세상이 노래지면서 앞이 안 보이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어떻게 버텨온 1년인데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겨우 시험은 마쳤고, 다행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렇게 1년 동안 죽을 것 같이 힘든 상황을 견디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제 내 인생에 버텨야 할 날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는 또 버티고 있었다. 내 맘 같지 않은 첫 직장에서 인정받기까지의 날들을 버텨 내고 있었고, 결혼을 깨 버리고 싶은 날들을 버텨 내고 있었고, 마흔이 넘어서는 병으로부터 버텨 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게 버티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것이 굴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버틴다는 것은 그저 말없이 순종만 하는 수동적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누워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게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버틴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나 모멸감, 부당함 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하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기다림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내는 것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내가 수험생 시절을 버티지 않았다면 의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인 의과대학에 가지 못했을 테고, 첫 직장에서 견뎌 내지 못했다면 정신분석을 공부할 생각을 못 했을 테고, 결혼을 깨 버렸다면 지금의 가족을 얻지 못했을 테고, 병으로부터 버티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책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버티면서 삶의 한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었고,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언니가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며 내가 죽어 버려야 했을 만큼 무가치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누군가에겐 때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등을 배웠다. 만약 버티지 않고 어느 순간 포기해 버렸다면 삶이 쉬웠을지는 모르겠지만 참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중략)
그러고 보면 어떤 것을 이루는 과정에는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버티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일의 의미와 절박성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며 결국은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므로 버티어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고, 항상 잘나가는 사람들이 자기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버티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겠지만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치지 말라고 말이다. 정말로 때론 버티는 것 자체가 답일 때가 있다.
김혜남(정신분석 전문의) 지음 / 갤리온 / ‘오늘 내가 사는게 재밌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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