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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자료실)정말 죽고 싶다’는 말의 의미

딸기라때 2023. 9. 16. 16:14

‘정말 죽고 싶다’는 말의 의미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자살 위기 이후,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미국으로 힘겹게 연수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시작되는 이상 감각, 즉 때로는 시리고 저리고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듯하다가 때로는 송곳으로 찔리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가족과의 여행도, 미국 대학으로의 정상적인 출근도, 어디에서 있는 드넓은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축구도..... 그 어떤 것도 불가능했다.

  연수하러 온 미국 대학 측에 양해를 구하고 출근하는 날을 최소한으로 줄인 다음,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심지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국 내 한의원을 찾아가 침을 맞기도 했다.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근거해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훈련을 받아왔고, 내가 가르치는 의과 대학생과 전공의들에게도 늘 이러한 면을 강조해 왔던 내가 장모님이 보내 주신 한약을 먹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다는 것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방 치료뿐 아니라,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근골격계에 자극을 주어 통증을 관리하는 수기 치료법이 일종. 국내에서는 공인되지 않는 방법이다), 운동 치료, 가바펜틴gabapentin(신경성 통증과 뇌전증을 앓는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을 비롯한 처방 약의 복용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함께 시도했다. 의과 대학 시절 열렬한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였던 내가 샌디에이고의 한 성당에 나가 세례를 받고 열심히 기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새로운 치료법의 실패가 반복되는 과정을 6개월 이상 겪으면서, 비로소 비수술적 방법으로는 증상의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2013년 1월, 나는 가족을 미국에 두고 혼자 귀국하여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LA 공항에서 인천까지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항공기 이착륙 시간과 기내에서 제공되는 식사 시간을 제외한 거의 열한시간 동안을 내내 서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유난히 추웠던 겨울, 수술을 받았다.

  속옷조차 입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 수술실이 정말 춥다고 느낀 것도 잠시, 마취제가 몸에 돌기 시작하면서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깨어났을 때는 나이든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옆을 지키고 계셨다.

  수술이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와 달리, 나는 수술 후 두 달이 지나 가족들이 기다리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수술 후에도 계속되는 증상에 새롭게 나타난 증상까지 더해지자, 나는 절망에 빠졌다. 직장에서는 몇 년째 내가 계속 아프다는 것을 반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동료 의사들과의 학회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 없었다. 모두들 “이제 허리는 어때?”라고 물어보는데, 3년이 되어 가는데도 계속 아프다고, 사실 이전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하기 싫었다.

  사람들을 피하며 지낸지 몇 달이 지나자, 나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마음의 진짜 정체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육체적 고통이 많이 줄어드는 날이 가끔씩 생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운동을 하기 위해 새로운 운동화를 사기도 하고, 미뤄 놓았던 논문 작업을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과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자, 또다시 이전과 동일한 고통이 찾아왔고 나는 거짓말처럼 다시 좌절하게 되었다. 조금 덜 아플 때 기분이 좋아져서 모임 약속을 하고 각종 강의나 회의 참석을 수락했다가 다시 많이 아파지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약속을 취소하는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면서, 나는 오히려 더 큰 절망감과 실패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바쁜 사람들이 어렵게 시간을 내어 잡은 회의나 모임에 “도저히 참석할 수 없으니 양해를 구한다”는 내용의 메일, 전화 혹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일찍 집에 들어온 날이면 그야말로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후 며칠을 더 우울해진 상태로 지내면서, 그저 언젠가 조금 덜 아픈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무력해진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그러다 보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또다시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한 해, 두 해 겪으면서 나는 분명히 배울 수 있었다.

  내가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외부의 무언가가 있을 때 그것에 따라 행동을 결정할 경우, 나의 생활 자체가 스스로도 예측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수록, 오히려 자기생활을 규칙적으로 잘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약속과 계획은 신중하게 잡고, 한번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면 가능한 한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루틴 routine’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루틴이란 어떤 일을 하기 전, 반복하는 늘 똑같은 행동이다.

  나는 매일 아침 여섯시에 일어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나의 몸에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그 후 잠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통증이 있는 곳을 비롯해 나의 몸 상태를 점검한다. 이것은 ‘신체탐색body scan’이라는 명상의 한 형태이다. 곧 상태가 좋지 않은 부위 위주로 스트레칭을 하고, 바나나나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병원으로 출근한다.

  주말에는 늦잠을 자곤 하는 가족들을 위해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내가 직접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그 덕에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 주말 아침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까?’하는 기분 좋은 고민을 한다. 모임이나 회의 약속은 가능한 한 잡지않지만 참석하기로 한 모음은 힘들어도 꼭 참석한다. 이렇게 많이 아픈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을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되풀이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의 생활을 통제가능한 범위로 들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활동 범위가 좁아지고 행동반경이 많이 줄긴 했지만, 일상이 안정되고부터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점차 사그라지고 그 자리를 ‘현재가 소중하다는 생각(지금 내가 영위하고 있는 일상을 어느 순간 유지하지 못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한)’이 대체해 가는 것을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요즘 나는 분명히 느낀다. 살면서 위기를 겪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자살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는 죽음 자체에 대한 갈구가 아니라 삶의 괴로움을 더는 견디기 힘들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우울감이 만들어 낸 것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점을. 그러므로 그 우울감을 다스릴 수 있다면, 자살 생각 역시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내 마음이 진짜 죽음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지음/ R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