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건강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심리적 바운더리(경계선)를 세우기

딸기라때 2023. 12. 13. 07:43

당신의 심리적 바운더리는 튼튼한가요?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던 많은 분들은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마음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내면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을 하시죠. 하지만 내면작업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마음이 강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연약한 마음이 무방비 상태로 상처입게 되는 대부분의 일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거든요. 그렇기에 관계에서 나를 어떻게 지키는가가 중요해져요. 거기에서 필요한 것이 나와 무수한 타인 사이의 바운더리(경계선)를 세우는 것입니다.

심리적 바운더리(boundary)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해주는 자아의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은 자신을 적절히 돌보면서 타인과 교류를 합니다. 하지만 불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지면 대인관계 내에서 자신을 돌보지 못하거나, 혹은 타인과 상호교류가 아예 차단되 버리는 경우도 생기지요. 살아가면서 ‘관계’도 중요하지만 ‘자아’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연한 삶을 위해서는 둘 중 어느 것도 완전히 소홀해 져서는 안돼요. 게다가 둘은 상호 영향을 줍니다. 자신을 지키는 게 우선 되어야, 타인과도 즐겁게 교류할 수 있어요. 또 관계 속에서 받는 긍정적인 에너지는 자아를 돌보는 에너지가 되겠지요. 그렇기에 자아와 관계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필요하고 그 것이 곧 심리적 바운더리를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의 경계선은 나만의 내밀한 정체성을 보호하고
나의 선택 권리를 지켜준다

-시인 제라르 맨리 홉킨스 -

만약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만 치우쳐 자아를 지키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두가지를 제안드릴게요.

첫째는 경계를 지키기 위한 표현을 명확히 하는 겁니다.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살피기보다는 타인에게 맞추려고 애쓰는 데에 익숙합니다. 그러면 타인이 하는 요구를 다 들어주거나, 타인의 제안에 무조건 ‘예스’라고 하게 되죠. 이는 타인이 경계를 침범하도록 허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줘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수용과 거절을 적절히 해주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타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거절을 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모두 오해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대는 다 채울 수가 없고, 나의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해요. 타인의 요구에 ‘no’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내려놓고 필요할 때는 정확히 의사를 표현하세요. 최대한 예의를 갖추되 단호하게 의견을 말해야 서로 오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분명히 어려운 과정이 되겠지요 그래서 두 번째로 제안드리는 것이 관계에서 자신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무작정 ‘거절해야지’라고 마음을 먹는 대신에 자신의 내면을 먼저 확인하세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요. 누구도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타인에게 에너지를 쏟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중요한게 무엇인지 알고 나의 욕구를 알고 있다면, ‘아, 지금 나에게는 A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 나를 위해 쉬는 게 더 중요하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죠. 친한 친구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설령 나에게 그만한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 내키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마지못해 빌려주는 게 아니라 내면을 잘 살펴보고 내가 마음이 편한만큼만 빌려주는 것으로 타협해볼 수 있겠지요.

자신의 기대와 욕구를 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에게 마냥 퍼주고 희생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한계가 있죠. 내가 그 욕구를 잘 알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제한을 둘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사람들의 기대를 모두 채워주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라고 이해해 봅니다. 그 다음, ‘나를 위한 시간을 따로 꼭 마련하자’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때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하자’ 라고 기준을 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타인에게 에너지를 많이 쏟는 타입이라는 걸 안다면 욕구를 알아차리고 한계를 파악한 후 현실에서 대처할 전략을 마련하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타인은 나에 대해서 서운한 감정이 든다고 하더라도, ‘아, 저 사람은 내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요구는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테고요. 그러면 습관처럼 무작정 부탁을 하거나, 선을 넘는 기대는 하지 않지요. 물론, 간혹 아무리 의사를 밝혀도 무례하게 경계를 무너뜨리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명확한 의사소통을 통해 경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운더리를 세운다는 것은 내 연약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위한 배려가 되기도 하는 거지요.

제안드린 두가지 방법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으실 겁니다. 오랜시간 쌓아온 습관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죠. 특히나 아주 오랫동안 타인지향적으로 살아왔고, 자신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아주 천천히 조금씩 바꿔간다는 생각으로 시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매일이 연습이라는 생각으로 작은 시도를 하다보면 1년뒤, 5년뒤는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겁니다. 자신을 세심하게 돌보고 경계를 명확하게 세우는 사람만이 관계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