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숨소리를 찾아서....
1.산행일시 : 2015년 6월 27일(토요일)
2.산 행 지 : 북한산(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
3.산행코스 : 독바위역 - 정진공원지킴터 - 족두리봉 - 향로봉 - 관봉- 비봉 - 사모바위 - 구기분소 하산
4. 날 씨 : 맑고 뭉개구름
5.산행시간 : 5시간 40분
6.산행후기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은 메르스와 사투(死鬪)
6월의 마지막 토요일!
별로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햇살은 이미 정중앙에서 뜨겁게 내려 쏜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북한산 위에 자리잡은 하얀 뭉게구름이 보이고 그 모습이 근사하고 정다워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북한산은 서울의 명산답게 그 모습 그대로 늘 좋은 풍경이 되어주곤 하지요. 날씨가 쾌청하여 능선을 오를때 마다 사방으로 서울시내가 가깝게 보이고... 북한산 숨소리를 찾아 느낀다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이다. 오늘 산을 찾은 나 자신! 그간 쌓인 스트레스 해소, 다시 생활의 활력소 충전을 위해 잠시 북한산에서 여유를 가져본다.
족두리봉에서 향로봉,비봉능선을 바라본다.
그 맑은 하늘의 색감을 가두지는 못 했지만 그 마루금의 선명함만으로도 뿌듯해 짐을 느낀다.
향로봉에서 바라보고 셀카
서울 은평구 일대 그리고 저멀리 한강까지 조망된다...
비봉 진흥와 순수비지에서 잠시 여유를 가지고 휴식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北漢山 眞興王 巡狩碑址]
독바위 정진공원지킴터 오르기전에 길가에 야생 산딸기
한여름 가뭄에도 이겨내는 생명체들.. 그러나 현재 오늘 가뭄과 인간의 생명의 위협을 주는 "메르스" 전염병에 감염 되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호젓한 산길을 걸어 정진공원지킴터 까지
정진공원지킴터
족두리봉(370m)
북한산에서 가장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높이는 해발 370m이다. 명칭은 멀리서 보면 봉우리의 모양이 족두리를 쓴 것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하였고, 독수리의 머리처럼 보인다 하여 수리봉 또는 인수봉과 닮았다 하여 '작은 인수봉'이라고도 부른다.
족두리봉에서 바라본 향로봉 능선
족두리봉에서 불광역에 있는 NC백화점을 가까이...
족두리봉에서 다음 코스를 향해 하산
지나온 족두리봉 뒷모습
좀더 가까이 족두리봉
향로봉
향로봉에서 바라본 삼각산 일대
향로봉에서 바라본 비봉
향로봉 일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1972년 7월 24일 사적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진흥왕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영토확장과 국위선양을 위해 세운 기념비인데 비석의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1972년 원비(原碑)인 국보 제3호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는 경복궁으로 옮겨져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하고, 비가 서 있던 자리를 사적으로 지정하여 표석(標石)이 세워져 있다. 비석은 아래쪽 모서리가 떨어져 나갔는데 이 자리가 산정(山頂)이기 때문에 풍화가 심할 뿐만 아니라 등산객의 왕래가 빈번하여, 비를 그대로 두면 손괴(損壞)가 점점 더할 것을 우려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강유역과 함경남도 지역까지 점유한 진흥왕은 555년 10월 북한산을 순행(巡行)하여 강역(疆域)을 확정하였고, 11월에는 북한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통과한 여러 고을에 1년 동안의 세금을 면제해주고 특별사면으로 죄수들을 석방하였는데,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순수비로 추정된다. 북한산의 승가사(僧伽寺) 뒤쪽 해발고도 556m인 큰 바위 위에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었으며 비석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비봉이라는 산봉우리 이름이 유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사모바위에서 내려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승가사를 거쳐 구기분소로 내려가는 방법과 진관사 계곡과 삼천사 계곡 가운데 능선인 응봉능선으로 가는 방법, 비봉 쪽으로 가거나 문수봉 쪽으로 일단 간 다음 그곳에서 여러 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해 내려가는 방법 등. 난 가장 쉽고 짧은 '승가사~구기분소'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비봉능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위가 사모바위이다. 능선의 중앙쯤에 있는 사모바위는 모양이 사모(紗帽·옛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모자)처럼 생긴 데서 유래됐다고 서울지명사전에 나와 있다.
‘김신조 바위’로도 불리는데, 1968년 1·21사태 때 공비들이 이곳을 1차 목표 지점으로 삼아 바위 옆 동굴에 은거했었다. 최근에 당시 상황을 소개하는 푯말들과, 동굴 안에는 공비의 밀랍인형까지 만들어 놓았다. 몹시 흉물스럽다.
사모바위 헬기장
사모바위
승가사(僧伽寺) 뒷편 높이 약 540m에 위치해 있다. 바위의 모습이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紗帽)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1968년 1·21사태 당시 김신조 일행이 바위 아래 숨어 있었다고 해서 김신조바위라고도 불린다.
사모바위 역사를 찾아서
사모바위에는 조선시대 남녀의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자는 전쟁터로 나갔다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사랑했던 여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전쟁이 끝나도 여인의 소식은 없고, 남자는 당시 끌려갔던 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여 살았다는 북한산 자락을 떠돌며 여인을 찾았지만 끝내 상봉하지 못했다. 남자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여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 구기동에서 사모바위를 보면, 바위도 홀쭉해 보이면서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전설의 출처는 찾지 못했으나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아픈 역사의 한 대목인 소위 ‘환향녀(還鄕女)’에 관한 얘기로, 북한산 자락의 홍제천은 그녀들과 관련이 있다. 양대 호란을 거치면서 청나라로 끌려갔다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들은 조선 땅에서 더 비참한 상황을 맞았다.
왕조실록에도 기록돼 있지만, 사족(士族)들은 이들 부녀자에 대해 ‘오랑캐에게 실절(失節)한 여자’라며 조정에서 이혼을 허락하도록 상소를 올렸고 논란을 빚었다. ‘화냥년’이란 치욕적인 욕설이 당시 만들어졌으니, 대부분의 사족 환향녀들은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조정에서도 딱한 이들 부녀자를 위해 ‘고국으로 돌아올 때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며 그 잘못을 따지지 않도록’ 정했다.
홍제천은 바로 북한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지금은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에 걸쳐 흐른다. 그렇다면 사모바위 전설대로, 당시 남편에게 돌아가지 못한 환향녀들이 북한산 자락에서 모여 살았다는 게 전설이 아니고, 그 여인들을 안쓰러워했던 민초들의 마음이 ‘사모바위’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사모바위가 왠지 애틋하지 않는가.
발길 닿는 대로 구기분소로 하산
구기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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