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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감정표출을 억압한다면

딸기라때 2018. 4. 11. 13:07

감정표출을 억압한다면

 

표출과 억압을 보완하는 채널링

 

다행히도 감정의 표출과 억압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표현과 억압 사이의 중도 노선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이것을 '채널링'이라고 부른다. 채널링은 감정이 요구하는 행동의 마무리를 뜻하기 때문에 감정을 채널링하면 그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누그러질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파티 상황에서는 표출과 억압 둘 다 문제가 된다. 분노는 극한에 이르렀고 그와 동시에 공포와 부끄러움이라는 다른 두 감정이 수반되었다. 마침내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때 당신의 감정이 지닌 재능을 공감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예를 들어, 분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보호하는 감시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공포는 직관과 행동을 유도하는 감정으로 이해하고, 부끄러움은 도덕성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 세 감정이 요구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은 물론 말 많은 당신의 친구와 주변 구경꾼들, 당신이 느끼는 고유한 감정에 대해 예의를 지킬 수도 있다.

 

나는 위와 같은 상황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단계별 프로세스에 대해 알지 못한다. 만약 그러한 프로세스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나는 분명 그 사람을 의심할 것이다. 상호작용은 특정 상황과 관련되기 때문에 그 상황마다 보일 반응은 매 순간 바뀔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나는 간편한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우선 당신의 감정에 귀 기울여라. 그리고 각 감정에 공감하며 타인과 솔직하게 상호작용하라.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면 사과하고 그와 다른 일을 시도해야 한다. 속임수를 써서 미안한 상황을 무마하고 넘어가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감정이 하는 소리를 잘 듣고 타인과 타인의 반응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감정의 채널링을 이해하기 위해 위와 똑같은 상황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즐거워야 할 파티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친구가 내 의상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모욕적이고 잔인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내 감정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는 신호이다. 이는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 부끄러움 덕분에 감정을 추스른다면, 이는 부끄러움을 잘 활용하는 한 예가 된다. 부끄러움의 감정이 내게 주는 경고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비록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몸을 더 꼿꼿이 세운 채 버티고 서서 수다스러운 친구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원하면 그 친구를 바로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공포와 부끄러움의 감정이 당신을 막아선다. 이는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분노를 억누르기만 하면,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친구의 농담에 대응하지 않고 공격을 당하는 사람처럼 비칠 것이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의 감정은 가만히 있는 것이 내 사회적 생존을 위해 최상의 접근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분노와 관련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무엇을 보호해야 하고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여기서 내 패션 감각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상대의 직접적인 공격은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분노는 결국 힘과 에너지를 주는 감정이다. 이 밖에도 세 번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정 역시 분노이다. 분노의 감정을 느꼈을 때, 우리는 위험 요소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나에게 유리한 감정으로 작용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농담을 한 친구에게 직접 몸을 구부리고 유머러스하게 말할 수 있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이다.

 

"난 너의 유머 감각을 참 좋아해. 그런데 이번 농담은 너무 심했어!"

 

상대방에게 그의 농담이 재미있고 그를 좋은 친구로 생각한다고 어필하면서도 농담이 지나쳤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나의 분노를 적절하게 채널링한 것이다.

 

"이봐, 너 때문에 상처 받았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야말로 가혹하지 않으면서 당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수년 간 감정에 관해 연구해 온 입장에서 나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는 사람인 척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런 행동은 결코 당신을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단지, 거짓말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 상처를 받지 않는 천하무적의 정신력을 가진 인간은 없다.

 

분노가 필요로 하는 행동을 완료했을 때, 경계선은 멋지게 재설정된다. 그러고 나면 분노는 서서히 사라진다. 위와 같은 한 마디를 건넨 상황이라면 수치심도 같이 누그러질 것이다. 나 자신과 친구를 모두 보호하는 말을 함으로써 감정을 채널링하는 행동을 훌륭하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보다 더 적절한 행동은 없다. 발생 가능한 위험과 위기를 고려하여 나의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로 효과적인 행동을 선택했기 때문에 두려움 역시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감정읽기-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법/ 칼라 매클래런 지음/ 전혜영 옮김/지식의 숲]